대학병원 내과에서 전공의 하고 있습니다. 원래 힘들 거 알고 들어왔고, 밤새는 것도 각오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몇 년 지나니까 다른 의미로 좀 무섭습니다. 예전에는 당직 끝나고 집 가면 “오늘 진짜 힘들었다”는 감각이라도 있었는데, 요즘은 힘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계속 호출 오면 가고, 설명하고, 처방 넣고, 보호자 응대하고, 또 다음 일 처리하고. 중간에 밥이 들어갔는지 물을 마셨는지도 기억 안 날 때가 많습니다. 몸이 힘든 건 익숙해질 수 있는데, 무감각해지는 건 익숙해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제일 답답한 건 누구 하나 대놓고 나쁘다고 하기도 어렵다는 점입니다. 환자도 불안해서 그러시는 거 알고, 보호자도 답답해서 그러시는 거 알고, 교수님들도 병동 굴러가게 하려면 예민해질 수 있다는 거 압니다. 그런데 그걸 다 이해하고 넘어가다 보면 정작 제 상태는 아무도 안 묻습니다. 바쁘냐고 물어도 사실 바쁘지 않은 날이 없으니까 대답도 의미가 없고, 힘드냐고 물어도 다 힘드니까 또 묻히는 느낌입니다. 결국 “원래 이런 거지” 한마디로 정리되는데, 그 말이 생각보다 사람을 많이 닳게 하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제가 환자를 사람으로 보기 전에 업무로 먼저 보기 시작한 것 같아서 스스로 놀랄 때가 있습니다. 그게 제일 죄책감 듭니다. 원래는 한 명 한 명 상태가 먼저 보였는데, 지금은 검사 결과, 베드 상황, 퇴원 가능 여부, 오늘 안에 끝내야 할 일 순서대로 머리가 돌아갑니다. 물론 그렇게 해야 일은 굴러가는데,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점점 흐려집니다. 쉬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하루 쉰다고 회복되는 종류의 피로는 아닌 것 같고요. 비슷하게 느끼는 분들 계신지 궁금합니다. 다들 어떻게 버티시는지, 아니면 버티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진짜 있을지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