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약 받아왔을 때는 솔직히 엄청 겁났어요. 제가 결혼 준비 중이라 할 일은 쌓여 있는데, 약까지 먹기 시작하면 더 멍해지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원래도 머릿속이 늘 바빴거든요. 예식장, 스드메, 회사 일, 집안 얘기까지 한꺼번에 들어오면 가슴부터 답답해지고 밤에 누워도 생각이 안 멈췄어요. 자야 되는데 자는 직전까지 계속 체크리스트 세우고, 또 빠뜨린 거 생각나고 ㅠㅠ

근데 약 먹고 제일 먼저 느낀 건 기분이 갑자기 좋아진 게 아니라 머리 소음이 좀 줄었다는 거였어요. 이 표현이 제일 맞는 것 같아요. 예전엔 작은 일 하나만 생겨도 생각이 열 갈래로 튀었는데, 그게 약간 한 줄로 서는 느낌? 아침에 눈 떴을 때부터 심장이 먼저 뛰던 게 조금 덜했고, 회사에서도 누가 말 걸면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으로 패닉 오는 그게 확실히 줄었어요.

대신 초반에는 좀 이상했어요. 내가 내가 아닌 느낌까지는 아닌데, 반 박자 느려진 것 같고 입맛도 애매하고 졸릴 때도 있었어요. 그래서 이게 맞나 싶어서 하루는 괜히 약통만 한참 보기도 했네요. 근데 저는 그 며칠 지나고 나니까 오히려 울컥하는 횟수가 줄어서 살 것 같았어요. 전에는 진짜 별일 아닌데도 혼자 화장실 가서 눈물 닦은 적 많았거든요. 그게 없어지니까 체력이 덜 새는 느낌이더라고요.

신기했던 건 주변에서 먼저 말한 거예요. 예민해 보이던 게 덜하다고, 말투가 좀 편해졌다고. 저는 제가 제일 티 안 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요 ㅋㅋ 그리고 제일 좋았던 건 밤이었어요. 전에는 누우면 하루 복기 시작돼서 잠드는 데 한참 걸렸는데, 약 먹고 나서는 적어도 누웠을 때 숨이 차는 느낌은 덜했어요. 잠이 바로 오는 날도 생기고요. 그게 진짜 컸어요. 잠을 좀 자니까 다음날 덜 무너짐...

완전히 괜찮아졌다 이런 건 아니에요. 근데 버티는 방식이 달라졌어요. 예전엔 이를 악물고 버텼다면 지금은 좀 덜 다치면서 지나가는 느낌. 저한테는 그 차이가 되게 컸어요. 괜히 미루다가 더 힘들어졌던 시간이 아까워서, 요즘은 그냥 그때의 저 상태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약 먹는다고 사람이 약해지는 건 아니더라구요. 저는 오히려 그제서야 일상이 좀 돌아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