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약을 하나 만들기까지는 통상 10년 넘게 걸리고 비용도 수조 원에 이른다. 후보물질을 찾아내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실패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 지루한 탐색 과정을 앞당기기 위해 양자컴퓨팅 기술을 신약 개발에 접목하려는 연구가 국내외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작업은 수많은 화합물 중에서 특정 질병 표적에 잘 들어맞는 분자 구조를 골라내는 일이다. 기존에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이나 실험실 반복 실험에 의존해 왔는데, 분자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계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한계가 있었다.
양자컴퓨팅은 원자와 분자 수준의 물리 현상을 다루는 데 강점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자의 움직임이나 분자 간 결합 에너지처럼 기존 컴퓨터로는 근사치만 계산할 수 있던 문제를, 양자역학 원리를 그대로 활용해 더 정밀하게 계산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이런 특성 때문에 제약업계와 학계에서는 양자컴퓨팅을 신약 후보물질 탐색과 분자 설계, 단백질 접힘 구조 예측 등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관련 학회에서도 양자컴퓨팅을 활용한 신약개발 세션이 늘어나는 추세다.

단백질 구조 분석하는 국내 연구진 [그림=메디닉스DB]
국내 연구기관과 대학에서도 양자컴퓨팅과 인공지능을 결합해 신약 후보물질을 탐색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화학구조 데이터베이스에서 특정 표적 단백질과 결합할 가능성이 높은 후보군을 추려내고, 이를 양자 알고리즘으로 재검증하는 방식이 시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양자컴퓨팅이 신약개발 전 과정을 단숨에 바꾸기보다는, 초기 단계인 후보물질 발굴 과정에서 시간을 단축하는 보조 도구로 먼저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유망 후보를 빠르게 걸러내면 이후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도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현재의 양자컴퓨터는 아직 오류가 발생하기 쉽고 다룰 수 있는 큐비트 수도 제한적이어서, 실제 신약개발 현장에 곧바로 적용하기에는 기술적 한계가 남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양자컴퓨팅이 상용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 때문에 현재 진행되는 연구들은 대부분 기존 슈퍼컴퓨터와 양자컴퓨터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택하고 있다. 계산이 복잡한 일부 문제만 양자컴퓨터에 맡기고 나머지는 기존 방식으로 처리해 현실적인 성능 향상을 꾀하는 식이다.

하이브리드 컴퓨팅 장비 점검하는 모습 [그림=메디닉스DB]
정부와 관련 기관도 바이오와 양자기술을 접목한 연구개발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약개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미래 기술 투자로 양자컴퓨팅을 주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환자와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런 기술 발전이 당장 눈앞의 치료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후보물질 탐색 단계와 실제 신약 허가 사이에는 여러 임상 단계가 남아 있어, 상용화까지는 여전히 오랜 검증 기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치료제 소식을 접할 때는 연구 단계인지 실제 허가받은 의약품인지를 구분해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특정 질환을 앓고 있다면 임의로 신약 임상시험 참여를 결정하기보다, 담당 의료진과 상담을 거쳐 공식적으로 등록된 임상시험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