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지 않은 음식이 전 세계에서 매년 8억 명이 넘는 질병을 일으킨다는 새 추정치가 발표됐다. 세계보건기구는 6월 4일 식품 속 세균과 바이러스, 기생충, 화학물질 등 42개 주요 위해요인을 분석한 결과, 오염된 음식으로 연간 약 8억6600만 명이 질병을 겪고 약 150만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이번 분석은 194개국의 2000년부터 2021년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가장 큰 부담은 어린아이에게 집중됐다. 5세 미만 아동은 전 세계 인구의 약 9%에 불과하지만 식품매개질환 사례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했고, 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보다 질병 위험이 약 세 배 높았다. 설사성 질환은 체중이 적고 탈수가 빠르게 진행되는 영유아에게 특히 위험하다. 납과 메틸수은 같은 화학물질에 음식으로 노출될 경우에는 성장 중인 뇌와 신경계에 장기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식품안전 문제는 식중독균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WHO는 2021년 기준 세균과 바이러스, 기생충 같은 생물학적 위해요인이 약 8억6000만 건의 질병을 일으킨 반면, 오염 식품과 관련된 사망의 73%는 화학적 위해요인과 연결됐다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무기비소와 납 노출은 심혈관질환과 암 위험을 높이며 상당한 사망 부담을 만든 것으로 평가됐다.

경제적 손실도 작지 않다. 식품매개질환으로 일을 하지 못하거나 생산성이 떨어져 발생한 손실은 2021년 약 3100억 달러로 추산됐다. 국가별 생활비 차이를 반영하면 손실 규모는 6470억 달러까지 늘었다. 식품안전은 개인의 복통과 설사 문제를 넘어 의료비와 노동손실, 취약계층의 건강격차로 이어지는 사회적 문제라는 의미다.

가정 식탁에서 가장 흔한 위험은 조리 전후 과정이 섞이면서 발생한다. 생고기와 익힌 음식을 같은 도마나 집게로 다루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옮겨갈 수 있다. 고기를 만진 손으로 샐러드나 과일을 손질하는 행동도 교차오염 가능성을 높인다. 조리 전후 손 씻기와 조리도구 분리는 특별한 장비 없이도 위험을 줄이는 기본 수칙이다.

WHO는 안전한 식품을 위한 핵심 원칙으로 청결 유지, 생식품과 조리식품 분리, 충분한 가열, 안전한 온도 유지, 안전한 물과 원재료 사용을 제시한다. 장을 본 뒤 냉장·냉동 식품은 가능한 한 빨리 보관하고, 조리된 음식은 실온에 오래 두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냉장고에 넣었다는 사실만 믿기보다 용기 밀폐 상태와 보관 기간, 냉장고 내부 온도를 함께 점검해야 한다.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이유식과 반찬을 한 번에 많이 만들어 장기간 보관하는 습관을 주의해야 한다. 먹일 만큼만 덜어 사용하고 아이가 먹던 숟가락을 공동 용기에 다시 넣지 않는 편이 좋다. 식재료를 손질할 때는 날것과 바로 먹는 음식을 분리하고, 육류와 달걀, 해산물은 내부까지 충분히 익혀야 한다.

복통과 설사가 시작되면 수분 섭취와 전신 상태를 관찰해야 한다. 혈변이나 고열, 반복되는 구토, 소변량 감소, 심한 무기력감이 나타나면 의료기관의 평가가 필요하다. 영유아와 고령자는 증상이 가볍게 보여도 탈수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으므로 평소보다 일찍 의료진에게 문의하는 편이 안전하다.

식품안전은 거창한 기술보다 매 끼니의 반복되는 습관에서 결정된다. 손을 씻고 날것과 익힌 것을 나누며, 충분히 가열하고 남은 음식을 신속히 보관하는 과정이 끊기지 않아야 한다. WHO의 새 추정치는 가정의 작은 위생 습관이 개인 건강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질병 부담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