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약국에서 일하면 늘 바쁠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바쁜 거랑 닳아 없어지는 거는 좀 다르더라고요. 처방전 몰리는 시간대 있잖아요. 그때는 진짜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계속 설명하고, 조제하고, 다시 전화 받고, 또 설명하고… 정신없이 돌다 보면 제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날 때가 있어요. 실수하면 안 되는 자리라 더 예민해지고요.
저를 제일 지치게 하는 건 일이 많다는 사실보다, 계속 친절해야 한다는 압박이에요. 몸은 이미 한참 전에 한계인데 표정은 괜찮아 보여야 하고, 목소리도 차분해야 하고, 같은 말을 열 번 들어도 처음 듣는 것처럼 대답해야 하니까요. 환자분이 예민하신 날엔 그 감정까지 다 받아내야 할 때도 있는데, 그게 하루 이틀 쌓이면 퇴근하고 나서 멍해져요. 누구 하나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냥 제가 텅 빈 느낌?
한번은 점심도 못 먹고 서 있다가, 손님 한 분 나가시고 조제대 뒤에서 갑자기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울고 싶은 것도 아니고 화나는 것도 아닌데,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잠깐 벽 짚고 있었어요. 근데 그 와중에도 바깥에서 벨 울리니까 바로 나가야 했어요. “잠시만요” 하고 다시 평소 톤으로 말하는데 그 순간 좀 서럽더라고요 ㅠㅠ 내가 지금 괜찮은 척을 어디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요.
주변에서는 약사니까 안정적이지 않냐는 말을 쉽게 하는데, 현장에 서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안정적이라는 말이 위로가 별로 안 돼요. 매일 긴장한 상태로 서 있고, 환자 상태도 신경 써야 하고, 보호자 반응도 살펴야 하고, 실수는 절대 용납 안 되고… 이게 계속 반복되면 사람 마음이 무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닳아요. 퇴근하고 집 가서도 한참 멍하고, 누가 말 걸면 대답하기 싫을 때도 많고요ㅋㅋ 웃긴 얘기 같아도 진짜 그래요.
가끔은 제가 원래 차분한 사람이라 버티는 건지, 그냥 무뎌진 건지 헷갈려요. 약 챙겨드리고 설명 잘 끝냈을 때 보람이 없는 건 아닌데, 그걸로 다 덮일 만큼 가볍지는 않네요. 요즘은 손님 없는 1분만 생겨도 가만히 숨부터 고르게 돼요. 그 1분이 없으면 하루가 너무 길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