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일 짜증나는 게 몸은 집에 왔는데 머리는 아직 거래처에 있다는 거예요. 차 세우고 올라와서 씻고 누워도 낮에 했던 말, 못 했던 말, 괜히 표정 안 좋았던 원장님 얼굴 이런 게 계속 돌아요. 아 그때 저렇게 말할걸, 그 제품 얘기 한 번 더 꺼낼걸, 괜히 눈치 봤나 싶고. 남들은 퇴근하면 끝이라는데 이 일은 이상하게 끝이 안 남아요.
CSO 영업 해보면 알잖아요. 숫자는 숫자대로 쫓기고, 사람은 사람대로 신경 써야 하고. 오늘 한 군데 분위기 좀 싸하면 집 와서도 그게 안 빠져요. 특히 내가 실수한 것도 아닌데 상대 반응이 애매했던 날은 더 심함. 괜히 혼자 의미부여하게 됨. 아 이제 끊기나, 다른 데로 돌리나, 내가 너무 자주 갔나. 이런 생각이 진짜 질기게 붙어요.
한동안은 집에서도 계속 핸드폰 들여다봤어요. 카톡 다시 보고, 일정 다시 보고, 메모 다시 보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확인을 해야 좀 덜 불안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사람 더 피곤하게 만듦. 쉬는 게 아니라 퇴근 후 2차 근무하는 느낌? 와이프가 옆에서 말 걸어도 대답 건성으로 하게 되고, 그러다 또 내가 왜 이러나 싶고 ㅠㅠ
제일 무서운 건 이게 큰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일상이 됐다는 거였어요. 바쁜 날만 그런 게 아니고 평범한 날도 똑같음. 특별히 깨진 데 없어도 머리 한쪽은 계속 돌아가요. 그래서 더 답 없게 느껴졌음. 밖에서 보기엔 멀쩡한데 혼자만 계속 안에서 소모되는 느낌. 번아웃이 거창하게 오는 게 아니더라. 이렇게 애매하게 오래 가는 게 더 사람 잡음.
요즘도 완전히 괜찮진 않아요 ㅋㅋ 그냥 예전처럼 퇴근 후까지 일에 끌려다니진 말자, 그 정도로만 버팁니다. 생각 안 하려고 애쓰면 더 생각나서 그냥 아 또 시작됐네 하고 넘겨요. 별거 아닌 얘기 같아도 이런 게 은근 오래 쌓이더라고요. 밖에선 멀쩡한 척하는 사람들 많을 텐데 속은 다 비슷할 수도 있겠다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