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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좀 자고 싶어서 그랬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5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어느새 수면제 없이는 잠들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처음에는 반 알로도 충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두 알을 먹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약의 효과가 줄면서 복용량이 늘어났고, 이후 그는 중요한 회의 도중 말을 잇지 못하고 익숙한 사람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경험을 했다. 그때 비로소 수면제가 단순한 ‘도움’이 아니었음을 실감했다. 문제는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다는 점이다.

불면증은 더 이상 일부 사람들만의 고통이 아니다. 스트레스, 과도한 야근, 늦은 시간까지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는 습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수면장애를 겪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국내 수면제 처방 건수는 900만 건을 넘었고, 이 중 상당수가 3개월 이상 약물을 복용하는 장기 사용자다. 현대 사회는 ‘수면제 없이 못 자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구조로 가고 있는 셈이다.

수면제의 작용 방식은 대부분 중추신경을 억제하는 원리다. 벤조디아제핀 계열과 비벤조디아제핀 계열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뇌의 GABA 수용체에 작용해 불안과 각성을 억누르고 졸음을 유도한다. 문제는 이 작용이 반복될수록 뇌가 스스로 자는 법을 잊는다는 데 있다. 내성은 빠르게 생기고, 같은 효과를 보기 위해 복용량을 늘리게 되며, 결국 약에 대한 의존이 시작된다. 금단 증상도 만만치 않다. 불면은 물론이고, 불안, 떨림, 두통, 심한 경우 발작까지 동반된다.

더 심각한 건 뇌 기능 자체에 미치는 영향이다. 다수의 연구에 따르면 수면제를 장기 복용할 경우 단기 기억력과 인지 속도, 집중력이 저하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특히 고령층의 경우 약물 대사 능력이 떨어져 약이 체내에 오래 머물며 뇌에 미치는 부작용이 훨씬 더 크다. 실제로 캐나다 퀘벡주의 한 연구에서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벤조디아제핀 계열 수면제를 6개월 이상 복용했을 때 치매 발병 위험이 1.5배 이상 높아진다는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수면제를 복용한 상태에서의 낙상 사고도 빈번하게 보고되고 있다. 깊은 잠에 빠진 상태에서 화장실을 가거나 움직이려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일이 자주 발생하며, 고령자의 경우 이로 인한 골절이 회복 불능의 상태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즉, 수면제는 단순한 약이 아니라, 일상의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는 요소다.

의료계는 수면제를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불면의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지행동치료(CBT-I)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비약물 치료법으로, 수면 습관을 바꾸고 심리적 불안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이와 함께 수면위생 관리, 규칙적인 기상 시간 유지, 저녁 시간 스마트폰 사용 줄이기, 명상이나 심호흡 같은 이완 요법을 병행하면 큰 도움이 된다. 최근엔 멜라토닌 유도체나 천연 성분의 수면 보조제도 시도되고 있으나, 이 역시 장기 복용은 피해야 하며 전문가 상담이 선행돼야 한다.

수면제는 분명 잠을 잘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응급처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에 의존하게 되는 순간, 삶의 질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 오히려 뇌를 갉아먹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 지금 당신이 잠들기 위해 삼키는 그 한 알이, 언젠가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게 만드는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