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 전공의로 일하면서 제일 자주 드는 생각 중 하나가, 버티는 게 맞는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덜 소모되는 자리로 옮기는 게 맞는지입니다. 처음에는 다들 힘든 거고 몇 년만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막상 연차가 쌓일수록 체력보다 마음이 먼저 닳는 느낌이 더 크더라고요. 당직 끝나고 집 가는 길에 “내가 여기서 계속 버틸 수 있나” 싶은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또 막상 이직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버틴 시간이 아깝고 괜히 옮겼다가 더 안 맞을까 봐 겁도 납니다.
주변 보면 저년차 때는 그냥 참고 가자는 분위기가 많은데, 중간 연차쯤 되면 생각보다 진지하게 이직이나 진로 변경 고민하는 사람들 꽤 있었습니다. 문제는 남들 사정이랑 제 사정이 다르다는 거죠. 누구는 교수 잡 생각해서 남고, 누구는 워라밸 때문에 페이닥터 쪽 알아보고, 누구는 아예 임상 말고 다른 길도 보더라고요. 저도 처음엔 “조금만 더 하면 적응되겠지” 했는데, 적응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이상하게 무뎌지는 것과 괜찮아지는 건 다른 문제 같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요즘 연차보다도 내가 이 일을 계속할 때 덜 무너질 수 있는 환경이 있는지가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월급이나 네임밸류도 물론 무시 못 하는데, 사람 갈아 넣는 분위기에서 몇 년 더 있는 게 결국 저한테 뭐가 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이직이 무조건 답이라는 말도 쉽게 못 하겠어요. 실제로 옮긴 뒤에 업무 강도는 비슷하고 적응 스트레스만 더 커졌다는 얘기도 들어서요. 결국 자기 성향, 체력, 인간관계 스트레스에 얼마나 취약한지까지 다 봐야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혹시 여기 계신 선생님들은 연차 쌓이는 시점에 이직 고민 어떻게 정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다들 비슷하게 흔들리다가 지나가는 건지, 아니면 진짜 옮겨보고 나서 좀 살 만해졌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요즘 사직서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다른 선택지를 알아보는 것 자체는 너무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기우는 중입니다. 괜히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까 봐 주변에서는 말을 아끼게 되는데, 익명이라 한번 적어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