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 잠들게 만드는 프로포풀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삶의 어느 순간을 생략해 내는, 그 생경한 시간과 공간대를 선물(?)처럼 경험하는 신세계, 드보르작 9번 2악장의 인트로에서 짧은 쉼표 후의 한없는 평화의 울타리, 내가 사랑하는 그 시간의 끝에 잠시 머물러 있었음을 그만 확인하고 만다.

T1N1aM0 속의 N1 때문에 'Stage 3'이었다. 인정하기 싫었다. 수서역 플랫폼에서 마네킹처럼 서 있었던 나,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버지, 괜찮아요, 1기 같은 3기에요. 자료에는 5년 생존률이 1기보다 높아요. 힘 내세요.”

5년 생존률? 스쳐 들었던 그 숫자, 갑자기 아득히 빠져나가는 거문도 날물때 낚시처럼 저문 노을이 풀어지고 있었다. 5년이라.. 잘 하면 한 1년은 추자도와 흑산도 낚시로, 1년은 북유럽의 오로라와 ‘애수’의 워털루 브릿지, 비틀즈의 리버풀, 그리고 펍에서의 맥주, 어이없는 버킷 리스트를 들여다보다 정신차리라는 SRT의 굉음에 소스라친다.

건강보험공단에 등록된 줄도 모르고 의사의 문진에 태연한 척했다. “초기입니다.” 더 묻지도 않았다. 나 같은 환자가 또 있나보다. 친구들에게도 지인들에게도 짧게 ‘초기’라는 말만 했다. 3과 5로 찍힌 주홍글씨를 보여주기 싫었다. 세상은 마치 암을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로 나뉜다는 이분법으로 차츰 나의 모래성을 쌓기 시작했다.

내 안의 방어기제가 팩트 앞에 무너진 건 다름아닌 항암이었다. S병원 담당의는 예상대로 다그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