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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만성골수성백혈병(CML)이 진단 훨씬 이전부터 빠르게 성장하는 종양세포에 의해 조용히 진행된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CML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알려진 ‘BCR::ABL1’ 융합유전자가 생성된 시점을 추적한 결과, 발병 3~14년 전 이미 첫 유전적 사건이 발생하고 이후 종양세포가 폭발적 속도로 증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성장 패턴은 대부분의 혈액암이나 고형암에서 관찰되는 점진적 진행 과정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영국 웰컴생어연구소 연구진은 CML 환자 9명의 단일혈액세포 1000여 개를 전장유전체 분석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 분석 대상은 22세에서 81세에 이르는 환자들로, 연구진은 세포 계통을 추적하는 계통수(phylogenetic tree)를 구축해 과거 어느 시점에 두 유전자가 비정상적으로 결합했는지, 그리고 그 이후 암세포가 어떤 속도로 증가했는지를 역추적했다. 연구 결과는 네이처(Nature)에 4월 9일자로 게재됐다.

CML은 두 염색체가 일부 뒤섞이는 유전적 재배열로 인해 발생한다. 9번 염색체의 ABL1 유전자가 22번 염색체의 BCR 유전자와 결합해 형태가 바뀌는데, 이를 ‘필라델피아 염색체’로도 부른다. 이 유전적 결합은 강력한 발암 신호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암세포가 언제부터 증식하기 시작하는지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이번 분석에 따르면 BCR::ABL1 융합유전자는 첫 발생 이후 암세포 집단을 빠르게 확대했다. 일부 환자에서는 종양세포의 연평균 증가율이 10만 퍼센트를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대부분의 암에서 수십 년에 걸쳐 여러 유전적 변화가 누적되는 것과 달리, 단 하나의 강력한 유전적 사건만으로 암세포가 이례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특성을 가진다는 의미다.

나이에 따른 성장 속도의 차이도 두드러졌다. 젊은 환자일수록 융합유전자를 지닌 세포의 증식 속도가 훨씬 빠르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차이가 표준 치료인 티로신키나아제 억제제(TKI)에 대한 반응성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부 환자들은 TKI에 잘 반응하지 않는데, 이번 연구는 성장 속도가 빠른 종양일수록 치료 저항성이 높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이를 임상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선 더 큰 규모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연구진은 또 다른 흥미로운 질문, 즉 “증상 없이 BCR::ABL1을 지닌 채 평생 살아갈 수 있는가?”를 검증하기 위해 미국 ‘All of Us’ 코호트 20만여 명의 유전체·건강 기록을 분석했다. 그 결과 융합유전자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은 결국 혈액질환을 진단받아, 무증상 상태로 평생 유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

연구 참여자 알렉산드라 카미젤라 박사는 “임상에서는 RT-PCR이라는 혈액 검사로 치료 반응을 관찰하지만, DNA 수준의 차이를 확인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며 이번 연구가 치료 반응성과 예후를 더 정확히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니어 저자인 조티 낭갈리아 박사 역시 “CML은 다른 암들과 달리 매우 짧은 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독특한 질환”이라며 “앞으로 치료가 잘 듣지 않는 환자들의 관리 전략을 세우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