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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대장암은 비교적 천천히 성장하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암이 생겨나는 초기 단계에서 이미 향후 경과가 결정되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최근 국제 공동연구진은 대장암이 발생할 때 암세포가 몸의 면역 감시를 피하는 순간, 이후 암의 성향과 치료 반응까지 좌우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러한 초기 변화는 암이 진행되며 크게 변하지 않아, 결국 환자마다 치료 효과가 달라지는 근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대장암은 영국 기준으로 매년 약 4만 명 이상이 새롭게 진단되는 매우 흔한 암이다. 검사·수술 기술이 발전했지만, 면역항암제에 좋은 반응을 보이는 환자는 전체의 약 15%에 불과하다. 상당수 환자에서 면역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이유 역시 이번 연구를 통해 설명될 실마리가 얻어졌다.

대장암은 처음 생성될 때부터 ‘면역 회피(immune escape)’라는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암세포가 면역세포에게 자신이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도록 유전자 조절을 바꾸는 현상이다. 면역세포는 보통 암세포 표면의 ‘네오안티젠(neoantigen)’이라는 단백질을 통해 위험을 감지하는데, 암세포는 이 신호를 줄이거나 없애 자신을 숨긴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암이 아주 작은 단계일 때 이미 확립돼 이후 성장 과정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처럼 초기에 형성된 암세포의 성질은 향후 치료 반응에도 영향을 미친다. 네오안티젠이 적게 발현되는 암은 면역세포가 암을 적극적으로 공격하기 어렵고, 면역항암제 역시 목표를 찾기 힘들다. 그 결과 일부 대장암 환자에서만 항암 면역치료가 잘 듣고, 많은 환자에서는 제한적인 효과를 보이게 된다.

이번 연구는 대장암 환자 29명의 종양에서 암세포와 면역세포의 유전 정보를 분석해 얻어진 결과다. 연구진은 DNA가 단백질에 감겨 있는 상태, 즉 후성유전(epigenetic) 변화를 세밀하게 조사했고, 이러한 변화가 암세포의 ‘신호 숨기기’를 돕는 핵심 요인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암세포는 후성유전 변화로 인해 네오안티젠의 생성량을 줄여 면역계의 눈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향후 치료 가능성도 제기됐다. 연구팀은 면역치료와 함께 후성유전 조절 약물을 사용하면 암세포가 다시 네오안티젠을 표출하도록 유도해 면역항암제의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이를 실제 치료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대장암의 발생 기전뿐 아니라 치료 전략까지 재정립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고 평가한다. 대장암이 어떻게 면역 감시를 피하는지 이해하면, 어떤 환자가 면역치료에 더 잘 반응하는지 예측할 수 있고, 앞으로는 개인별 맞춤형 치료 접근도 보다 정교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장암은 초기 발견이 가장 중요한 암 중 하나다. 50세 이후 정기적인 대장내시경 검사, 가족력이 있을 경우 더 이른 나이에 검진을 시작하는 것이 권고된다. 또한 선종성 용종을 미리 제거하면 암으로 진행되는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암의 근본적 성향이 초기에 결정된다는 이번 연구 결과는 조기 진단과 예방적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