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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정상 범위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는 노인이라도 허리둘레가 기준치를 넘어서면 암 발생 위험이 유의하게 높아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체중이나 체질량지수(BMI)만으로 건강을 평가하는 기존 인식과는 달리, 노년층에서는 복부비만이 별도의 독립적 위험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국내 대규모 연구가 확인한 셈이다.

고려대구로병원 내분비내과 장수연 교수 연구팀은 체질량지수와 허리둘레가 고령층 암 발생과 어떤 관련을 갖는지 조사한 결과, BMI는 높을수록 암 위험이 오히려 낮아진 반면 허리둘레가 클수록 암 발생이 증가하는 상반된 패턴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평균 11.3년 동안 진행된 추적 관찰에서 총 4만3000건이 넘는 암 발생이 집계되며, 두 지표가 암 위험과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사실이 더욱 뚜렷해졌다.

그동안 비만이 염증 반응과 산화스트레스, 인슐린 저항성을 촉진해 암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꾸준히 축적돼 왔다. 다만 대부분 BMI를 기준으로 비만의 정도를 평가해 왔다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체질량지수가 체성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노년층에서는 체중이 비슷하더라도 근육량과 지방량의 비율이 크게 달라질 수 있고, 체지방은 특히 복부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허리둘레는 내장지방의 축적 정도를 비교적 정확히 반영하는 지표로 꼽힌다. 남성 90cm, 여성 85cm 이상이면 복부비만으로 분류되는데, 내장지방은 염증성 물질과 특정 호르몬을 분비하며 각종 대사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연구에서도 허리둘레가 클수록 암 발생률이 상승했고, 이 경향은 특히 남성에서 더욱강하게 나타났다. 정상체중(BMI 18.5~23) 그룹에서도 허리둘레가 큰 집단은 암 위험이 뚜렷하게 증가해 BMI만으로 위험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

연구팀은 체질량지수가 높은 노인에서 암 위험이 낮게 나타난 이유를 단순한 지방 축적이 아닌 근육량과 영양 상태의 반영으로 해석했다. 고령층에서는 근육량 유지 자체가 건강 상태를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일정 BMI 이상을 유지한다는 것 역시 영양 결핍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이에 반해 허리둘레 증가는 내장지방 축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암 발생과 더 긴밀히 연관된 것으로 분석된다.

장수연 교수는 “노인은 나이가 들며 근육량이 감소하고 지방이 복부 중심으로 재분포되는 특징이 있다”며 “체질량지수만으로는 노년층의 체성분과 대사건강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허리둘레 관리가 암 예방에서 더욱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근육량과 체지방 분포까지 포함하는 후속 연구가 진행되면 노인의 암 발생 위험을 예측하는 데 새로운 기준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부비만이 암 외에도 다양한 질환을 유발하는 위험요인이라는 점 역시 이번 연구의 메시지를 강화한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김진조 비만대사수술센터장(위장관외과 교수)은 허리둘레가 증가할수록 고혈압, 제2형 당뇨병, 고지혈증, 지방간, 심혈관질환 등 만성질환 위험이 빠르게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체중 변화가 크지 않아도 복부만 비만한 중장년층은 이를 간과하기 쉬워 정기적 검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복부비만 예방과 관리에 있어 생활습관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짠 음식과 고열량 식단을 줄이고 단백질·식이섬유 중심의 식사로 바꾸는 것이 권장되며, 아침 식사 거르기나 과식 같은 불규칙한 식습관은 내장지방을 늘리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운동은 걷기, 자전거타기, 수영 등 유산소운동을 기본으로 삼고 복부 근력을 강화하는 근력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내장지방은 겉으로 보이는 피하지방보다 감소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서 꾸준한 실천이 효과적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노년층 건강관리에서 “정상체중=낮은 위험”이라는 단순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체중이 가벼워도 허리둘레가 크면 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고, 체중이 다소 나가더라도 근육량이 유지되면 위험이 줄어들 수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예방 전략에도 중요한 기준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