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에 왔는데도 오늘 거래처에서 나눴던 대화가 자꾸 다시 재생되더라고요. 낮에는 능청스럽게 “아이고 선생님, 그 말씀 하실 줄 알았습니다” 이러면서 잘 넘긴 것 같았는데, 막상 씻고 누우면 제가 너무 말이 많았나, 괜히 저 표현이 부담이었나 싶어요. MR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몸은 퇴근했는데 머리는 아직도 병원 복도에 걸쳐 있는 날이 있지 않습니까. 특히 미팅이 여러 군데 겹친 날은 누구한테 뭘 어떻게 말했는지 복기하다가 혼자 민망해질 때도 있고요.

저는 이상하게 잘된 미팅보다 애매했던 미팅이 더 오래 남습니다. 반응이 좋으면 “오, 오늘 괜찮았네” 하고 끝나는데, 표정이 미묘했거나 예상 밖 질문이 들어왔던 자리는 밤에 더 선명하게 떠올라요. “그때 저렇게 말할 걸”, “자료는 저 포인트부터 꺼낼 걸” 이런 생각이 줄줄이 따라오니까요. 심지어 별뜻 없이 하신 말도 집에 와서 다시 해석하게 됩니다. 이거 직업병 맞죠? 좋게 보면 다음 방문 때 더 나아질 수 있는 복기일 수도 있는데, 너무 길어지면 사람 진이 빠지더라고요.

요즘은 그래서 퇴근 후에 일부러 정리를 짧게 하고 끝내려고 합니다. 메모장에 딱 세 줄만 써요. 오늘 먹힌 포인트 하나, 애매했던 포인트 하나, 다음에 바꿔볼 말 한 줄. 그 이상 쓰기 시작하면 끝도 없더라고요. 완전히 털어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물론 어떤 날은 그렇게 써놔도 새벽에 갑자기 “아, 그 제품명 순서를 왜 그렇게 말했지” 싶어서 벌떡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참 사람이 웃기죠. 낮에는 그렇게 태연한 척 다 해놓고 밤에는 혼자 반성회 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세요? 퇴근 후에도 거래처 말투, 표정, 질문 같은 게 계속 남는 편이신지 궁금하네요. 그냥 다들 비슷한 건지, 제가 유독 생각이 많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괜히 “영업은 멘탈이 반”이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닌 것 같아요. 다들 머리 끄는 본인만의 방법 있으시면 하나씩만 좀 알려주십시오. 저도 좀 사람답게 퇴근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