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국 초반엔 저도 제약 쪽 사람들 오시면 말을 꽤 귀담아들었었어요. 시골이다 보니 정보가 늦기도 하고, 누가 먼저 와서 설명 잘 해주면 그게 또 크게 들리거든요. 제품 하나 들어오면 반응 좋다, 요즘 원장님들 많이 쓴다, 금방 돈다 이런 얘기들요. 그땐 아 그런가보다 했었죠.
근데 몇 번 데이고 나니까 좀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제일 허탈했던 건, 밀어넣듯 들여놓은 품목이 한참 안 나가서 유효기간만 자꾸 눈에 밟히던 때였어요. 창고 정리하다가 박스 다시 볼 때 그 기분이 참 별로예요 ㅠㅠ 설명 들을 땐 분명 금방 돌 것 같았는데, 막상 우리 동네 환자들 흐름이랑은 전혀 안 맞았던 거죠.
영업 잘하는 분들은 참 매끈하게 말씀하세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닌데, 결국 본인 숫자가 먼저인 건 맞더라고요. 그걸 제가 늦게 배웠어요. 전화도 자주 오고, 얼굴도 자주 비추고, 사람 좋게 웃으면서 부탁하면 거절하기 좀 미안하잖아요. 저도 사람인데요 ㅋㅋ 근데 그 미안함으로 물건 받기 시작하면 답이 없어요. 책임은 제가 지는 거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좀 박해졌어요. 필요한 거 아니면 안 받습니다. 옛날엔 관계 생각해서 한두 개라도 받았는데, 이제는 그 한두 개가 쌓여서 짐 된다는 걸 아니까요. 시골 약국은 한 번 잘못 들이면 빠져나가는 속도가 진짜 느려요. 도시처럼 금방금방 회전 안 됩니다. 이 차이를 현장에서 안 겪어본 사람 말만 듣고 판단하면 꼭 손해 보더라고요.
이 바닥 현실이 뭐 거창한 건 아니고, 결국 재고는 말이 없다는 거예요. 설명은 그날 듣고 끝나는데 박스는 몇 달을 남아요. 저는 그게 제일 크게 남았어요. 그래서 이제 누가 뭐라 해도 제 약국에서 실제로 나가는 속도만 봅니다. 좀 야박해 보여도 어쩔 수 없어요. 한 번 묶인 돈은 진짜 오래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