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일하면 별일을 다 보는데, 이상하게 몸보다 머리가 더 안 꺼지는 날이 있어요. 진짜 바쁘게 뛰고 욕먹고 보호자 달래고 그러는 건 익숙한데, 가끔 영업 쪽 사람들 한마디가 퇴근하고도 계속 남더라고요. 그날도 인계 끝내고 겨우 옷 갈아입는데 낮에 만났던 사람이 했던 말이 자꾸 생각났어요. “선생님, 이것만 좀 봐주세요. 진짜 도움 되실 거예요.” 그 말투가 왜 그렇게 안 잊히는지
응급실은 도움 되는 거 싫다는 사람이 없어요. 문제는 타이밍이죠. 환자 밀리고, 콜벨 울리고, 의사 찾고, 보호자는 앞에서 쏘아붙이는데 그 와중에 웃으면서 자료 한 장 내미는 거. 본인은 되게 예의 있게 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받는 쪽은 딱 그 순간 숨이 턱 막혀요. 나 지금 이것까지 받아야 하나 싶고. 근데 또 대놓고 짜증 못 내죠. 병원 바닥이 원래 다 연결돼 있으니까
집에 와서 씻고 누웠는데도 그 장면이 자꾸 재생돼요. 내가 너무 예민했나 싶다가도 아니지 싶고. 솔직히 그날은 환자 하나 보내고 마음이 좀 가라앉지도 않았던 날이었거든요. 그런 날은 평소엔 넘길 말도 못 넘겨요. 그냥 “다음에 오세요” 했으면 끝났을 텐데, 괜히 내 표정이 싸했나, 말투가 날카로웠나 그것까지 혼자 복기함 ㅠㅠ 피곤해서 눈은 감기는데 머리는 계속 근무 중인 느낌
이런 게 웃긴 게, 정작 큰일은 금방 털어요. 응급실 사람들 원래 그래요. 급한 건 급하게 처리하고 끝. 근데 애매하게 찝찝한 말, 선 넘은 건 아닌데 기분 남는 말, 그런 게 오래 가더라. 대단한 사건도 아니고 누구 하나 크게 싸운 것도 아닌데, 그런 날이 제일 사람 진 빠져요
그래서 요즘은 퇴근길에 그날 생각 끌고 가지 말자, 이게 잘 안 돼도 일단 차에서 한 번 욕하고 끝내자 ㅋㅋ 그렇게라도 끊어보는데 쉽진 않네요. 몸은 집에 왔는데 머리는 아직 응급실에 걸쳐 있는 날, 진짜 그게 더 피곤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