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쯤 일하다 보니까 체력은 예전보다 조절이 되는데, 이상하게 머리는 더 오래 남는 날이 있더라고요. 집에 와서 씻고 누웠는데도 오늘 보호자 표정, 신규 선생님이 당황하던 장면, 내가 조금 더 다르게 말할 수 있었던 순간 같은 게 하나씩 다시 떠오르는 날이 있어요. 몸은 분명 퇴근했는데 마음은 아직 병동 복도에 서 있는 느낌이랄까요.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연차 있는 선생님들도 비슷한 얘기 꽤 하시더라고요.
저는 특히 바쁜 날보다 애매하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던 날 더 심했어요. 큰 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괜히 내가 놓친 건 없었나 계속 되짚게 되는 거요. 예전엔 이걸 책임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오래 두면 잠도 얕아지고 다음 근무 들어갈 때 이미 지친 상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퇴근 직전에 머릿속으로 정리하지 않고, 메모장에 딱 세 줄만 적어요. 오늘 잘한 거 하나, 걸리는 거 하나, 다음 근무 때 확인할 거 하나. 그렇게 밖으로 꺼내놓으면 생각이 조금 덜 맴도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집에서는 일부러 “계속 생각하는 시간”을 짧게 정해두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씻기 전 10분만 오늘 일 생각하고, 그 뒤에는 차 마시거나 드라마 한 편 틀어놓는 식으로요. 완전히 안 떠오르게 하는 건 어렵지만, 생각이 나도 “아까 정리했지” 하고 멈추는 연습은 되더라고요. 후배들한테도 가끔 말하는데, 우리가 환자 생각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어도 그 생각이 나를 계속 물고 있으면 결국 내 컨디션이 먼저 무너지는 것 같아요.
다들 퇴근 후에 머리 식히는 자기만의 루틴 있으세요? 운동, 산책, 그냥 바로 자버리기 뭐든 좋고요. 저는 차분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도 어떤 날은 생각이 새벽까지 이어져서, 다른 선생님들은 어떻게 끊어내는지 좀 궁금하네요. 너무 오래 가면 혼자 버티기보다 주변에 털어놓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