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찍고 나오면 끝이어야 하는데, 몸만 집에 와 있고 머리는 아직도 응급실에 남아 있는 날이 있잖아요. 저는 특히 바빴던 날보다 애매하게 걸리는 날이 더 오래 남더라고요. 크게 터진 일은 없었는데, 환자 표정 하나, 보호자 한마디, 내가 지나가듯 했던 설명 한 문장이 자꾸 다시 재생돼요. 그때는 분명 최선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샤워하다가도 “내가 그 말은 좀 다르게 했어야 했나” 싶고, 누우면 갑자기 심전도 알람 소리 들리는 것처럼 멍해질 때도 있어요.

응급실 일 오래한 사람들은 공감할 것 같아요. 힘든 건 일 자체보다도 퇴근 후에 정리가 안 되는 머리인 경우가 많아요. 현장에서는 판단 빠르게 하고 감정은 뒤로 밀어두는 게 습관이 되니까, 끝나고 나서야 그 감정이 한꺼번에 따라오는 느낌이랄까. 누구 하나 살렸다고 바로 뿌듯하게 끝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놓친 게 없었다고 누가 완전히 확인해주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더 찝찝하게 남는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체력보다 생각이 더 사람을 지치게 하는 날이 있어요.

저는 요즘 퇴근 후에 일부러라도 머리 끊는 루틴 만들려고 해요. 집 가는 길에 같은 장면 반복되면 그냥 메모장에 한 줄 쓰고 덮어버리거나, 샤워 전에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했다” 이 말 한번 해요. 되게 별거 아닌데 생각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반대로 술로 눌러버리거나 그냥 참고 자면 다음 근무 때 더 예민해지더라고요. 결국 우리도 사람이라서, 안 남는 척한다고 진짜 안 남는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혹시 여기 계신 분들은 퇴근 후에 안 풀리는 생각 어떻게 정리하세요? 저는 이게 아직도 제일 어렵네요. 경력 쌓이면 무뎌질 줄 알았는데, 무뎌지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남는 것 같아요. 일 잘하는 거랑 마음 정리 잘하는 건 완전 별개더라고요. 다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비슷한 밤 보내는지 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