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당직 서고 나면 몸보다 머리가 더 멍한 날이 많습니다. 어제도 새벽까지 이것저것 겹쳐서 뛰어다니다가, 아침 회진 끝나고 잠깐 앉았는데 갑자기 허탈하더라고요. 밤새 보호자 설명하고, 검사 결과 확인하고, 콜 받고, 급한 일 처리할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모르는데, 막상 정리되고 나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은 순간이 한 번씩 옵니다. 환자 상태가 안정되면 다행인데, 그렇다고 제 컨디션까지 바로 돌아오는 건 아니니까 그 간극이 좀 큽니다.
특히 제일 힘든 건 육체적으로 바쁜 날보다 애매하게 계속 긴장만 유지되는 날인 것 같습니다. 큰 이벤트는 없는데 콜은 자잘하게 계속 오고, 입원은 밀리고, 응급실 컨설트는 끊기지 않고, 한 명 정리하면 또 한 명 생기고요. 그 와중에 차팅 밀리면 마음만 더 급해집니다. 전공의 하시는 분들은 다 비슷하시겠지만, 바빠서 힘든 거랑 끝날 것처럼 안 끝나서 지치는 거랑은 좀 다른 종류더라고요. 후자가 은근히 사람을 더 닳게 하는 것 같습니다.
신기한 건 그런 날에도 환자분이 “고생 많으세요” 한마디 해주시면 또 묘하게 버텨집니다. 반대로 별 뜻 없는 말인데도 타이밍 안 좋으면 하루 종일 남을 때도 있고요. 결국 일 자체도 일이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부딪히는 직업이라 감정 소모가 생각보다 큰 것 같습니다. 저는 원래 무던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 하다 보니 무던함도 체력 따라간다는 걸 좀 느낍니다.
다른 과 선생님들도 비슷하실지 궁금하네요. 당직 끝나고 나서 그냥 자면 회복되는 분도 있는지, 아니면 저처럼 한동안 머리가 계속 윙윙거리는 분도 있는지요. 저는 요즘 쉬는 날에도 첫 반나절은 사람이 덜 된 느낌이라, 이걸 그냥 시간이 해결해주는 건지 아니면 생활 패턴을 좀 손봐야 덜 무너지는 건지 고민됩니다. 다들 어떻게 버티시는지 경험담 있으면 듣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