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퇴근 찍고 집에 와도 일이 끝난 느낌이 잘 안 듭니다. 몸은 분명히 집에 와 있는데 머리는 아직 병동에 걸쳐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요. 특히 좀 애매했던 케이스나, 낮에 보호자 설명하면서 괜히 표현이 부족했던 것 같은 날은 씻고 누워도 그 장면이 한 번씩 다시 떠오르더라고요. 그때는 그냥 피곤해서 예민한가 싶었는데, 이런 게 쌓이니까 쉬는 시간에도 쉬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당직 다음날은 더 그렇습니다. 잠깐 눈 붙이고 일어나도 머리가 맑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덜 정리된 상태로 생각이 이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내가 그때 labs를 하나 더 봤어야 했나”, “그 말투가 너무 차갑게 들리진 않았나” 이런 식으로요. 막상 다음날 차트 다시 보면 큰 문제 없이 지나간 경우도 많은데, 그 순간에는 별것 아닌 일도 오래 남습니다. 일 자체가 사람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숫자 하나보다 말 한마디가 더 오래 남는 날도 있고요.

저만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제일 애매한 건 퇴근 후에 일부러라도 업무 생각을 끊어야 하나 싶은 부분입니다. 완전히 끊자니 불안하고, 계속 붙들고 있자니 생활이 없어진 느낌이 듭니다. 운동을 해도 잠깐이고, 밥 먹으면서 영상 틀어놔도 어느 순간 다시 아까 환자 상태나 내일 해야 할 일 생각으로 돌아갑니다. 서울에서 자취하다 보니 집이 조용해서 그런지 더 생각이 커지는 날도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여기 계신 분들은 이런 거 어떻게 정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연차 쌓이면 좀 무뎌지는 쪽인지, 아니면 따로 루틴 같은 게 있어야 도움될 수 있어요 정도인지요. 저는 요즘 퇴근길에 일부러 메모 조금 해두고 집에선 안 보려고 하는데, 이것도 어떤 날은 잘 되고 어떤 날은 또 안 되네요. 비슷한 경험 있으셨던 분들 있으면 편하게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