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침형 인간은 진작에 포기했거든요. 제약 영업 하는 사람이면 그래도 부지런한 척은 해야 되는데, 집에서는 그 얄팍한 체면이 하나도 안 먹힙니다. 왜냐면 저희 집 강아지가 시계를 볼 줄 아는지, 제가 늦잠만 자면 바로 침대 옆에 와서 한숨을 쉬어요. 사람처럼요. 처음엔 귀엽다 했는데, 이게 매일 쌓이니까 은근 자존심 상합니다 ㅋㅋ
한번은 전날 거래처 저녁 자리 길어져서 진짜 넉다운됐는데요. 아침에 눈 떠보니까 평소보다 40분이나 늦은 거예요. 저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는데, 얘는 이미 방문 앞에 앉아서 저를 보고 있더라고요. 막 반가워서 꼬리치는 분위기도 아니고, 되게 담담하게요. 딱 “이제 일어나셨습니까?” 이런 표정. 제가 허겁지겁 옷 주워 입는데도 안 따라오고, 먼저 현관 쪽으로 가서 또 기다립니다. 와 진짜 민망하더라고요. 집에서까지 눈치 볼 줄은 몰랐죠 ㅠㅠ
산책 나가서는 더 웃겨요. 평소 코스가 있는데 제가 급하다고 짧게 돌려 하면 바로 멈춰섭니다. 리드줄 당긴다고 오는 애도 아니고, 뒤돌아서 저를 쳐다봐요. 그 눈빛이 되게 선명해요. “아저씨, 오늘 대충 치실 겁니까?” 이런 느낌. 결국 제가 져서 늘 가던 공원 끝까지 갔습니다. 덕분에 넥타이 맨 채로 땀 빼고 출근했네요. 차 타고 가면서도 괜히 웃겨서 혼자 피식했어요.
이상한 게, 저는 그냥 밥 챙기고 산책시키는 쪽이라고 생각했는데 같이 살다 보니까 반대더라고요. 얘가 제 생활을 관리합니다. 밤에 늦게 들어와도 한 번 얼굴 보고, 물그릇 채워놓고, 잠깐이라도 같이 앉아 있어야 마음이 좀 놓여요. 누구 보여주려고 하는 말 아니고, 진짜 그 몇 분 때문에 집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사람 상대는 하루 종일 말이 많아도 기 빨리는데, 얘는 말 한마디 안 하면서 사람을 꼼짝 못 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요즘은 아침마다 제가 먼저 깨는 척합니다. 절대 개한테 끌려다니는 집사는 아니라는 마지막 자존심이랄까. 근데 솔직히 말하면 이미 진 지 오래됐죠. 현관 앞에서 목줄 물고 서 있는 거 보면, 오늘도 예예 모시겠습니다 하고 따라나가게 됩니다. 아주 영악해요. 근데 또 그 맛에 삽니다 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