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 오래 하다가 겨우 들어간 첫 직장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게 엑셀도 아니고 메일 쓰는 법도 아니고 눈치 보는 타이밍이었음. 일은 솔직히 배우면 되는데, 문제는 “지금 물어봐도 되나” 이걸 모르겠더라. 팀장님 키보드 소리 세지면 말 걸면 안 될 것 같고, 다들 바빠 보이면 나만 숨 쉬는 것도 민폐 같고. 그래서 혼자 끙끙대다가 결국 마감 직전에 “이거 왜 이렇게 됐어요?” 소리 들은 적 있음. 그날 집 가면서 아, 나는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타이밍을 더럽게 못 잡는구나 싶었음.

제일 웃긴 건 회사 사람들이 다 엄청 어른 같아 보였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까 다들 그냥 버티는 중이더라. 점심시간만 되면 표정 풀리고, 커피 한 잔 들고 “아 오늘은 진짜 퇴사 마렵다” 이런 말 자연스럽게 나옴. 처음엔 그런 말 들으면 놀랐는데 나중엔 저도 제일 먼저 그 소리 하고 있었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저는 출근 2주 만에 영혼을 사내 메신저 상태메시지에 두고 다니는 사람이 됐음.

한 번은 진짜 별것도 아닌 일로 혼난 적 있는데, 파일명 뒤에 최종 붙여놓고 또 수정해서 최종진짜, 최종진짜2 이렇게 만든 거였음. 지금 생각하면 저도 웃김. 근데 그때는 괜히 자존심 상해서 화장실 가서 손만 씻고 옴. 울지는 않았고, 울 시간도 없었음. 오후 회의 들어가야 해서. 회사 다니면서 느낀 건 큰 실수보다 애매한 실수가 사람 더 힘 빠지게 만드는 듯. 대형사고는 수습이라도 같이 하는데, 그런 자잘한 건 혼자 민망함을 오래 씹게 됨.

그래도 신기한 게 그런 날 몇 번 지나니까 아주 조금은 덜 쫄게 되더라. 모르면 빨리 물어보는 게 덜 혼나고, 혼나도 생각보다 세상 안 망하고, 퇴근하면 또 배고파서 라면 먹게 됨. 다만 아직도 “편하게 말해요”라는 말은 안 믿음. 안 편하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여기 직장 갤 형님들은 첫 회사나 첫 조직에서 제일 당황했던 순간 뭐였음? 저만 이렇게 초반에 눈치로 체력 다 쓴 건지 궁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