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제일 신기했던 거 하나 있음. 분명 출근은 내가 했는데 퇴근할 때는 영혼이 먼저 집에 가 있었음. 몸만 자리에 앉아서 엑셀 보고 있었는데, 팀장님이 “책읽는밤 씨, 이거 금방 되죠?” 하는 순간 갑자기 시간이 멈춤. 회사에서 말하는 “금방”은 늘 내 하루를 뜻하더라. 10분짜리처럼 던져준 일 세 개가 합쳐지면 왜 늘 야근이 되는지 아직도 미스터리임.
특히 제일 웃겼던 건 회의였음. 이미 결론 정해놓고 다 같이 모여서 의견 내는 척하는 그 시간. “자유롭게 말해봐요” 해놓고 진짜 자유롭게 말하면 공기가 싸해짐. 그때 알았음. 회사에서 자유는 와이파이 이름 같은 거구나, 있다고는 하는데 막상 잘 안 잡힘. 내가 한번 일정 너무 빡세다고 말했다가 “다들 힘들어요” 한마디 듣고 바로 조용해졌는데, 그 뒤로는 입사 초의 패기는 사라지고 그냥 점심 메뉴에만 진심인 인간이 됐음.
그리고 제일 공감 갔던 게, 직장인은 체력이 아니라 표정 관리로 버틴다는 거. 속으로는 “아니 이걸 왜 내가?” 백 번 외쳐도 겉으로는 “아 네 확인해보겠습니다” 자동재생됨. 나중엔 내가 친절한 건지 그냥 기력이 없는 건지 구분도 안 갔음. 퇴사하고 한동안은 알람 안 듣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올라가더라. 그 회사 복지가 뭐였냐고 묻는다면, 퇴사 후에 비로소 누릴 수 있는 평온함이었던 듯.
근데 가끔 취준 다시 하다 보면 무섭기도 함. 또 어디 가서 “잠깐만요”가 한 시간이고, “간단한 수정”이 인생 수정되는 데 들어갈까 봐. 다들 회사 다니면서 제일 어이없었던 순간 하나씩 있지 않냐. 나만 유독 회사에서 기 빨린 건지, 원래 직장 생활이 다 이렇게 사람을 조용히 말려가는 건지 궁금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