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영업 오래 하면 다들 한 번씩은 이직 타이밍 재보시잖아요. 저도 딱 그랬습니다. 처음엔 연차 붙을수록 몸값 올라가는 줄 알았는데, 막상 10년 훌쩍 넘기고 보니까 회사 안에선 “베테랑이시죠” 소리 듣고, 밖에선 “그래서 지금 나와서 새로 적응 가능하세요?” 이 표정이더라고요. 사람 민망하게요 ㅋㅋ
한 번은 거래처 돌다가 아는 후배가 다른 회사로 옮겼다길래, 저도 괜히 심장이 좀 뛰었습니다. 연봉도 올랐다 하고 담당 품목도 훨씬 깔끔해졌다는데, 듣는 순간 제 노트북 가방만 더 무겁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날 퇴근하고 채용 공고를 쭉 봤는데, 참 웃긴 게 예전엔 “내가 갈 데 많지” 싶었거든요. 근데 막상 나이, 연차, 기존 실적, 적응 기간 이런 거 숫자로 보니까 자신감이 푹 꺼졌어요.
더 웃긴 건 회사 다닐 때 제일 힘들었던 포인트가, 막상 이직 생각 들어가면 장점처럼 보입니다. 익숙한 병원 라인, 누구한테 전화하면 바로 받는지 아는 감, 괜히 쌓인 눈치 같은 거요. 이게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다 보니, 새 회사 가서 다시 바닥부터 관계 만드는 상상하니까 제가 생각보다 겁이 많더라고요. 아 이 나이에 또 그렇게 해야 되나 싶고 ㅠㅠ
그래서 한동안은 이직 사이트만 켜놓고 지원은 못 했습니다. 되게 없어 보이죠? 근데 그 시간이 저한텐 제일 솔직했던 것 같아요. 진짜 회사를 옮기고 싶은 건지, 그냥 지금 팀장 꼴 보기 싫어서 도망가고 싶은 건지 구분이 되더라고요. 저는 후자였어요. 그거 인정하고 나니까 오히려 좀 편해졌습니다. 자리 바꾸면 인생 확 달라질 줄 알았는데, 제 속이 먼저 정리돼야 하더라고요.
지금도 가끔 공고 봅니다. 아예 마음 접은 건 아닌데, 예전처럼 홧김에 휙 나가진 않겠다는 정도예요. 연차 쌓인 사람 고민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더라고요. 잘 버틴 커리어를 갈아탈 배짱이 있냐, 딱 그거 하나였습니다. 저는 아직 간만 보는 중입니다. 좀 치사해 보여도 뭐 어떡합니까, 제 인생인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