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병원 내과 전공의로 일하다 보면 큰 이벤트보다도 별거 아닌 순간이 더 오래 남을 때가 있더라고요. 얼마 전에도 야간당직 때 응급실에서 병동으로 올라오는 환자 한 분을 받았는데, 검사 결과 설명하고 현재 상태 말씀드리고, 오늘 밤은 이렇게 볼 거라고 최대한 차분하게 정리해 드렸습니다. 솔직히 그날은 저도 이미 체력이 거의 바닥이라 말수가 많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보호자분이 듣고 나서 “선생님도 많이 지쳐 보이는데 그래도 끝까지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시는데,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사실 일할 때는 감사 인사보다도 항의, 불만, 재촉을 더 자주 듣는 편이잖아요. 그게 누구 잘못이라기보다 다들 급하고 불안하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막상 연달아 당직 서고 새벽에 호출 계속 받다 보면 사람 마음이 점점 메말라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저도 어느 순간부터는 설명이 점점 짧아지고, 꼭 필요한 말만 하게 되고, 괜히 표정도 굳는 것 같아서 스스로 좀 놀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저 말이 더 크게 들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완전히 무뎌진 건 아니구나 싶기도 했고요.
근데 또 현실은 현실이라, 그런 순간이 있어도 다음 호출 오면 바로 다시 업무 모드로 돌아가야 하니까 감상에 젖을 틈은 없더라고요. 병동에서는 오더 밀려 있고, 응급실에서는 베드 기다리고 있고, 교수님 연락은 와 있고, 인계 시간은 다가오고요. 결국 좋은 말 한마디가 버티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시스템이 편해지는 건 아니라서, 요즘은 내가 너무 예민한 건지 아니면 다들 비슷한지 궁금해졌습니다. 전공의 하다 보면 원래 이렇게 사소한 말 한마디에 괜히 며칠씩 끌려가게 되는지요.
여기 계신 분들은 일하면서 유독 오래 남았던 환자나 보호자 말 있으셨나요? 꼭 감동적인 말 아니어도요. 오히려 별뜻 없이 들은 말이 계속 생각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서요. 저는 요즘 체력보다 감정 소모가 더 크게 오는 날이 있는데, 다들 어떻게 정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식이 있으면 들어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