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애 데리고 소아과 다녀왔는데 진짜 반나절이 그냥 사라졌네요. 새벽부터 애가 콧물 훌쩍이더니 목소리도 살짝 잠겨서, 아 이건 버티다 더 커지겠다 싶어서 바로 나갔어요. 육아휴직 중이면 시간 좀 여유로울 줄 알았거든요? 그건 진짜 제 착각이었고요 ㅋㅋ 애 한 명 외출시키는 게 거의 소규모 이사 수준이더라고요. 기저귀 챙기고 물 챙기고 간식 챙기고, 막상 문 닫고 나오면 뭔가 하나 빠뜨린 느낌 꼭 남음.

병원 도착했더니 비슷한 집이 다 모여 있었어요. 애들은 다들 한쪽씩 찡찡대고 보호자 얼굴은 묘하게 초췌하고... 그 대기실 공기가 있음. 조용한데 안 조용한 느낌. 우리 애는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컨디션 살아나서 의자 위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아까 집에서는 분명 축 처져 있었거든요. 왜 꼭 의사 선생님 앞에 가기 직전에 멀쩡해지는지 모르겠어요. 보호자만 예민한 사람 되는 그 그림.

진료실 들어가서는 더 웃겼어요. 집에서는 입도 잘 벌리더니 막상 선생님이 목 보자니까 입을 악물고 고개를 돌림. 겨우 달래서 봤는데 다행히 크게 심한 건 아니고 목이랑 코 쪽이 좀 부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설명은 차분하게 해주시는데, 저는 그 와중에 애 무릎으로 못 튀어나가게 잡느라 땀남ㅠㅠ 소아과 선생님들은 진짜 짧은 순간에 애 상태 보고 보호자도 안심시키고 처방까지 딱 하는 게 신기해요. 괜히 소아과가 전투 현장 같다는 말이 나온 게 아닌 듯.

약국 가서 약 받는데 또 하나 배웠네요. 시럽약 하나 먹이는 것도 집에서는 이벤트예요. 약사님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잘 먹을 거예요” 하시는데, 그 말 듣는 순간 속으로 아니요 선생님 저희 집은 아닙니다... 싶었어요. 실제로 집 와서 첫 숟갈 넣는 순간 얼굴 구겨지더니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버티는데, 그 표정이 또 웃겨서 혼자 피식함. 이래서 아픈 애 앞에서도 잠깐씩 웃게 되나 봐요. 미안한데 웃김.

예전엔 병원 다녀왔다 하면 진료만 보고 오는 줄 알았는데, 애 데리고 가보니까 그게 아니라 보호자 멘탈까지 같이 왔다 갔다 하는 일정이더라고요. 집에 돌아오니 애는 약 먹고 잠들었고 저는 괜히 기운이 다 빠져서 식탁에 멍하니 앉아 있었네요. 별일 아닌 감기 비슷한 건데도 한번 다녀오면 하루가 통째로 병원 중심으로 굴러가요. 그래도 애 숨소리 좀 편해진 거 들으니까 아침에 허둥대던 게 싹 잊히긴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