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약 먹는다고 뭐가 그렇게 달라지겠나 싶었음. 솔직히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맨날 비슷하잖아. 시험기간이든 발표 전이든 지하철 오래 타든 갑자기 배가 꼬이고, 화장실 위치부터 찾게 되는 거. 그래서 병원에서 약 받아왔을 때도 반신반의했음. 또 며칠 괜찮다가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싶어서.
근데 이상하게 제일 먼저 달라진 건 배가 아니라 머리였음. 예전엔 밖에 나가기 전에 무조건 화장실 한 번 더 가고, 가는 길에도 아프면 어떡하지 이 생각이 계속 박혀 있었거든. 약 먹고 며칠 지나니까 그 생각이 아주 없어지는 건 아닌데 좀 뒤로 밀림. 수업 들어가 앉을 때도 출입문 가까운 자리부터 찾던 습관이 덜 심해졌고.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하루 기분 자체가 다름.
배 상태도 완전 드라마틱하진 않은데, 그 애매하게 사람 긁는 느낌이 줄었음. 전엔 장이 하루 종일 예민하게 부풀어 있는 느낌? 밥 먹고 나면 바로 신호 올까 봐 긴장했는데 약 먹는 동안은 적어도 먹자마자 식은땀 나는 날이 덜했음. 대신 좀 묘하게 더부룩한 날이 있어서 그것도 짜증났음 ㅋㅋ 하나 좋아지면 하나 거슬리는 식.
웃긴 건 주변 사람들은 내가 나아진 걸 배 아픈 횟수로 보는 게 아니라 성격으로 보더라. 원래 나는 약속 잡아도 장소부터 이동시간까지 혼자 계산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예전보다 덜 예민해 보인다고 함. 사실 안 예민한 게 아니라 계속 계산하던 소리가 좀 작아진 거임. 속으로는 아직도 카페 가면 화장실 위치 슬쩍 보고 있음ㅠㅠ 그냥 티를 덜 낼 뿐.
그래도 약 먹으면서 제일 싫었던 건 내가 몸 상태에 덜 끌려다니는 날이 생기니까, 그동안 내가 괜히 유난 떨었던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거. 근데 아니었음. 아플 땐 진짜 아픈 거였고, 지금도 컨디션 꼬이면 바로 올라옴. 약이 사람을 멀쩡하게 바꿔준다기보다 겨우 숨 돌릴 틈을 만드는 느낌이 더 맞는 듯. 그 틈 생기니까 그제야 좀 사람답게 굴 수 있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