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롤 하다가 멘탈 박살 나는 판 한두 개 나오면 바로 게임 끄고 뭐 하나 틀어놓는 버릇 생겼거든. 부산이라 그런지 비 오는 날엔 이상하게 더 집에 박혀서 영화나 드라마 보게 됨. 최근에 제일 기억 남는 건 범죄물 드라마 하나랑 좀 묵직한 영화 한 편이었는데, 둘 다 보고 나서 “아 이건 엔딩 보고 바로 딴 거 틀면 안 된다” 이런 느낌이었음. 한동안 여운이 남아서 컴퓨터 켜놓고도 바탕화면만 보고 있었음. 원래는 뭐 보면서도 중간중간 폰 보고 딴짓하는 편인데, 이번엔 좀 집중해서 봤다.
드라마는 초반에 좀 천천히 가는 척하다가 갑자기 사람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스타일이더라. 등장인물들이 다 하나씩 수상해서 “얘가 범인인가?” “아 얘는 너무 티 나니까 아닐 듯?” 이러면서 혼자 추리했는데, 내가 맞힌 건 거의 없었음. 역시 방구석 코난은 랭겜 승급전에서만 강한 걸로. 근데 그런 작품이 재밌는 게, 다 보고 나면 초반 장면 다시 생각나잖아. “아 그때 저 표정이 복선이었네” 이 맛이 있음. 억지 반전만 던지는 게 아니라 캐릭터 감정선도 따라가게 해서 괜찮았고, 괜히 다음 화 자동재생 누르게 만드는 타입이었음. 문제는 새벽 3시에 “한 화만 더” 하다가 다음날 수업 때 눈 반쯤 감고 있었던 거.
영화는 분위기가 완전 반대였음. 막 빵빵 터지는 액션보다 조용하게 쌓아 올리다가 한 방 주는 스타일. 이런 건 재미없으면 진짜 졸린데, 잘 만든 건 사람을 묘하게 붙잡아 둠. 화면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과하게 설명 안 하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생각하게 되더라. 보고 나서 바로 “와 개쩐다” 이런 느낌보다 집 가는 길에 계속 장면 떠오르는 쪽? 약간 맞고 오는 영화 느낌. 괜히 허세 잡는 말 같긴 한데 진짜 그랬음. 끝나고 나서 유튜브 해석 영상 찾아볼까 하다가, 이상하게 이번엔 그냥 내가 느낀 대로 남겨두고 싶어서 안 봤다. 가끔은 해설 없이 멍하게 남는 맛도 괜찮은 듯.
근데 나만 그런가, 예전엔 그냥 스토리만 재밌으면 됐는데 요즘은 캐릭터 대사톤이나 분위기, 템포 이런 걸 더 보게 됨. 게임도 스토리겜 하면 연출 좋은 거에 더 끌리듯이 영상물도 비슷한가 봄. 아무튼 요즘 볼 거 찾는 사람 있으면 너무 가벼운 것만 말고 이런 여운 남는 작품 한 번 섞어보는 거 추천함. 대신 다음날 일정 없을 때 보셈. 한 편만 본다? 그건 다이어트 내일부터랑 비슷한 말임. 너네는 최근에 본 드라마나 영화 중에 “이건 좀 오래 남았다” 싶은 거 있었냐? 너무 무거운 거 말고, 재밌는데 생각할 거리 좀 있는 쪽으로 추천받고 싶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