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겉보기와는 달리 예민하다. 생각이 많아진다. 갖은 상상에 개연성을 부여하고 감정의 소모에 심신이 지친다. 모두가 경험한다. 그렇다고 운명으로 받들긴 억울한 심사지만 이 또한 부질없다.
어머닌 늘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몸을 맡긴다 하셨다. '눈에 보이는 돌은 남아 있는 돌이다. 목숨도 남아있을 뿐 곧 흩어질 게 아니냐. 열심히 살았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나. 슬퍼 마라. 헐은 몸으로 몇 년을 더 산들 그게 너와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역사의 우산에 들면 인간의 서사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잊혀진 존재는 허구일 뿐, 사람의 기억을 떠돌다 어느날 무심하게 스러진다.
어느날 의사가 이르기를, 최장암은 현재까지는 고통없이 보내드리는 방사선 요법밖에는 별 방법이 없다는 걸 무슨 비방이나 되는 듯 권유했다. 두 달 후, 어머니는 그렇게 아들의 품에서 세상을 놓으셨다. 그 진부하다는, 어머니 사랑해요,라는 말을 생전에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 아내와 함께 통곡을 했다.
스물 다섯에 홀로 되시어 55년을 청상 아닌 청상으로 살으신 어머니, 그 질곡의 날들에 손자 셋을 천운으로 여겨, 반듯하게 키워내신 어머니, 그 주변에서 우리 부부는 어머니의 전성기에 덤으로 행복했다.
가신 지 19년, 아들이 속절없이 어머니 나이에 이르러, 더 살겠다고 병원 문턱을 나들다 문득 정신을 차린다. 이게 아닌데... 난 왜 어머니처럼 마음을 다듬지 못하고 늘 서성거릴까.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