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고 나서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하루가 제법 금방 가더라고요. 예전엔 바쁘게만 살다가 요즘은 동네 카페 한 군데 정해두고 천천히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이 제일 좋네요. 창가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 오가는 거 보고 있으면, 다들 저마다 바쁜데 또 그 안에서 열심히 살고 있구나 싶어서 괜히 마음이 차분해져요.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들인데, 요즘은 그런 소소한 풍경이 더 눈에 들어오네요.
며칠 전엔 비 온 다음날이라 그런지 산책길 공기가 유난히 맑았어요. 늘 걷던 길인데도 나뭇잎 색이 더 선명해 보여서 잠깐 멈춰 서서 한참 봤어요. 예전엔 목적지가 있어야 움직였는데, 이제는 그냥 걷는 것 자체가 좋더라고요. 발이 조금 뻐근한 날도 있긴 한데,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걸으면 기분 전환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걷다 보면 꽃집 앞 냄새도 맡고, 이름 모를 새 소리도 들리고, 그런 게 참 별거 아닌데 하루 기분을 꽤 바꿔주네요.
카페에서도 재밌는 게 많아요. 옆자리에서 친구들끼리 수다 떠는 소리 들리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고, 혼자 책 읽는 사람 보면 괜히 나도 책 한 권 챙겨올걸 싶고요. 사실 저는 요즘 카페 가도 커피보다 창밖 보는 시간이 더 길어요. 한가하게 있다가 집에 돌아오면, 오늘 뭐 대단한 걸 한 건 아닌데 이상하게 잘 보낸 날 같아서 그게 참 좋네요. 나이 들수록 큰 즐거움보다 이런 작은 만족이 더 오래 남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