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만 거의 10년 가까이 있었는데, 웃긴 게 연차 쌓이면 길이 보일 줄 알았거든요. 근데 반대더라. 신규 때는 그냥 버티면 됐어요. 욕 먹어도 집 가서 울고 다음날 또 나가면 됐는데, 6~7년차 넘어가니까 그때부터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 닳았어요. 내가 여기서 더 버텨서 뭐가 달라지지 싶은 거. 환자 오는 속도는 더 미쳐가고 보호자 응대는 점점 더 빡세고, 책임은 당연하단 듯이 늘어나는데 월급명세서 보면 기분이 진짜 이상해짐 ㅋㅋ
이직 생각 제일 세게 든 건 작년이었어요. 밤근무 끝나고 아침에 퇴근하는데 발이 너무 붓고 허리가 찢어질 것 같은데, 선배 한 명이 툭 그러더라구요. 여기서 오래 버틴다고 대우 좋아지는 거 기대하지 말라고. 그 말이 되게 세게 박혔어요. 사실 다 알잖아요. 연차 붙으면 후배 교육, 컴플레인 중간처리, 의사랑 사이에서 조율하는 잡일 다 내 몫인데 그게 연봉으로 깔끔하게 보상되는 곳 많지 않다는 거.
그래서 진짜로 몇 군데 알아봤어요. 부산 안에서도 이름값 있는 데, 집이랑 좀 먼 데, 중소병원까지. 근데 막상 면접 보고 조건표 받아보면 허탈해요. 공고에는 번듯하게 써놨는데 까보면 연봉 구조가 애매하거나, 수당 포함해서 부풀린 데도 있고, 오프 개수는 말만 좋고 실제 스케줄은 현장 가봐야 아는 식. 이직하면 뭔가 확 나아질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 사러 가는 느낌이더라구요. 그래서 더 열받았어요. 남는 것도 지옥, 나가는 것도 복불복이니까.
주변에서는 연차 있으면 옮기기 좋지 않냐고 쉽게 말하는데, 응급실 오래 있었던 사람은 그게 또 애매해요. 경력은 분명한데 너무 응급실 색이 짙어서 다른 파트 가면 다시 적응해야 하고, 응급실끼리 옮기자니 결국 비슷한 판에 들어가는 거라. 저도 한동안은 내가 겁이 많아서 못 나가나 싶었는데, 지금은 그냥 병원이 직원 붙잡는 방식 자체가 사람 지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잘 버티는 사람한테 더 얹고, 안 나가는 사람은 당연한 사람 취급하고.
요즘은 예전처럼 무작정 의리로 못 버티겠어요. 남아 있으면 적어도 돈이라도 납득돼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면 왜 참고 있나 싶음. 저처럼 연차 차서 이직 고민하는 사람들, 괜히 내가 배부른 고민하나 이런 생각 안 했으면 좋겠어요. 오래 버틴 사람일수록 더 흔들릴 만해요. 현장 돌아가는 꼴을 제일 정확하게 보고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