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한다고 하면 아직도 약 이름 줄줄 외우고 웃으면서 병원 도는 일쯤으로 보시는 분들 있더라고요. 예, 겉으로는 맞습니다. 넥타이 매고 샘들 일정 맞춰서 들어가고, 잠깐 얼굴 비추고, 자료 드리고 나오면 끝 같죠. 근데 현장에선 그 “잠깐” 한 번 만들기가 진짜 사람 말리는 일이에요.
요즘 제일 빡센 건 출입 자체입니다. 예전처럼 슬쩍 들어가서 대기 타는 분위기가 아니거든요. 출입 등록 따로, 방문 목적 확인 따로, 어떤 병원은 아예 시간 단위로 막아놔서 10분 늦으면 그냥 날리는 거예요. 서울 시내만 돌아도 길 막히고 주차 꼬이면 끝입니다. 겨우 맞춰 갔는데 “오늘은 외부 미팅 안 받습니다” 한마디 들으면 속으로는 아... 싶죠 ㅋㅋ 근데 또 얼굴엔 티 내면 안 되잖아요. 네네,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하고 나와야죠.
더 웃긴 건 그렇게 어렵게 들어가도 실제로 얘기할 시간은 2~3분도 안 나온다는 겁니다. 샘들도 바쁘신 거 아니까 길게 붙잡을 생각도 없어요. 근데 회사에서는 왜 이 병원은 반응이 약하냐, 왜 처방 흐름이 안 보이냐, 왜 면담 수가 적냐 숫자로 찍어 누르거든요. 아니 선생님, 면담이 안 잡히는데 수가가 어떻게 올라갑니까... 현장 한 번만 돌아보시면 바로 이해하실 텐데 그건 또 안 돌아보세요.
제일 허탈한 날은 하루 종일 뛰었는데 남는 게 하나도 없는 날입니다. 아침부터 서너 군데 돌고 커피도 제대로 못 마셨는데, 면담은 다 밀리고 전달만 하고 끝. 차에 타면 그때부터 다리 풀립니다. 근데 또 저녁엔 보고 올려야 해요. 왜 못 만났는지, 다음 액션은 뭔지, 경쟁사는 어떤지. 사람 만나러 다니는 일인데 정작 사람보다 시스템 상대하는 시간이 더 길어요.
이 일 해보면 체력이 아니라 멘탈이 먼저 닳습니다 ㅠㅠ 웃으면서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일주일 내내 그러면 내가 영업을 하는 건지 출입문이랑 싸우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다음날 되면 또 셔츠 다리고 나갑니다. 별수 있나요. 먹고사는 건 해야죠. 근데 진짜 현장 고충 얘기할 땐 약 얘기보다 출입 얘기부터 나오는 이유, 해본 사람은 바로 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