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당직 서고 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내가 피곤한 건 둘째치고 마음이 너무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서울에서 내과 전공의로 지내다 보면 하루가 정말 길고도 짧습니다. 새벽에 콜 몇 번 받고, 아침 회진 돌고, 검사 결과 챙기고, 보호자 설명하다 보면 밥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는 날이 적지 않더라고요. 몸은 익숙해지는 척하는데, 막상 집에 가면 멍하게 앉아만 있게 되는 날이 많습니다.

가끔 제일 힘든 건 일이 많다는 사실 자체보다, 계속 누군가의 급한 상황 사이에서 제 감정을 뒤로 미뤄야 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환자분이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답답하고 불안하실 텐데, 그 마음을 알면서도 제가 동시에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을 때가 있거든요. 설명은 충분히 드리고 싶은데 시간은 쪼개져 있고, 실수는 하면 안 되고, 선배나 교수님 판단도 빨리 받아야 하고요. 그러다 보면 제가 사람을 보는 건지, 업무를 처리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주변에서 의료진이면 늘 침착하고 단단할 거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은근 부담됩니다. 사실 저희도 당직 다음 날이면 집중력 떨어지고, 괜히 작은 말에 예민해지고, 집 가는 길에 한숨만 쉬는 날 많습니다. 특히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쉬는 날에도 완전히 쉬는 느낌이 잘 안 나고, 휴대폰 울리면 순간 심장이 먼저 반응합니다. 다들 비슷하실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게 제일 서글프더라고요.

여기 계신 분들은 이런 무뎌짐이나 소진감 올라올 때 어떻게 버티시는지 궁금합니다. 대단한 방법 말고, 진짜 현실적으로요. 저는 요즘 병원 근처 편의점 커피 말고 일부러 조금 돌아가서 바람 쐬고 들어오는 걸 해보는데, 그 몇 분이 생각보다 숨통이 트이긴 했습니다. 그래도 오래 가는 건 아니네요. 다들 현장에서 느끼는 고충이 다르겠지만, 가끔은 그냥 비슷한 얘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좀 덜 답답할 것 같아서 적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