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약국 문 연 지 꽤 됐는데요, 저는 개국하면 적어도 제 시간은 좀 생길 줄 알았어요. 병원 옆에서 정신없이 치이는 것보단 낫겠지 했거든요. 근데 그 생각이 제일 순진했습니다 ㅋㅋ 손님 없는 시간엔 쉬는 게 아니라 그때부터 정리, 반품, 장부, 재고, 전화가 몰려요. 문 닫아도 끝이 아니고요.

한번은 겨울 감기철에 약이 진짜 안 들어오던 때가 있었어요. 처방은 나왔는데 약이 없으니 환자분 얼굴부터 굳지요. 저는 도매상에 전화 돌리고, 비슷한 성분 되는지 확인하고, 다시 병원 쪽에 연락하고... 그걸 하루 종일 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카운터 안에서 앉아 있는 사람인데 실제론 중간에서 욕 제일 많이 먹는 자리더라고요. 환자분은 왜 없냐 하시고, 보호자는 미리 못 구했냐 하시고, 병원은 처방 바꾸기 번거로워하고요.

그날 제일 기억나는 게 할머니 한 분이셨어요. 멀리 면 단위에서 버스 타고 오셨는데 약이 하나 비어서 다시 오셔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화를 내시는데 틀린 말도 아니었어요. 저도 속에서 열이 확 올라왔는데, 그냥 죄송하다고밖에 못 했습니다. 제 잘못만은 아닌데 현장에서는 결국 제 일처럼 받아내야 하더라고요. 그게 이 바닥 현실 같아요. 책임은 제일 가까운 사람한테 떨어집니다.

이상한 건 그렇게 하루 종일 치이고 나면 남는 것도 크지 않다는 거예요. 바깥에선 약국 하면 안정적이다, 편하겠다 그렇게들 보시는데, 실제론 사람 상대 스트레스가 제일 큽니다. 약 하나 못 맞추면 실수한 사람 되고, 잘 맞춰도 당연한 거고요. 시골은 또 더해요. 손님이 손님이 아니라 다 아는 분들이라서, 한번 서운하면 오래 갑니다 ㅠㅠ

그래도 다음날 또 문 열지요 뭐. 아침에 셔터 올리면 어제 일은 또 뒤로 밀립니다. 멋있는 사명감 얘기까지는 못 하겠고요, 그냥 이 동네에서 제가 빠지면 불편한 사람이 생긴다 그 정도로 버팁니다. 개국하면 편해진다는 말,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