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키우면 산책하면서 머리 식히고 그러는 줄 알았거든요? 나도 딱 그 생각이었음. 집에만 있으면 내가 더 늘어지고 딴생각만 심해져서, 아 얘랑 같이 나가면 생활이 좀 굴러가겠네 했는데 첫 달은 그냥 내가 끌려다님 ㅋㅋ 진짜 말 그대로. 나는 신발 한 짝 신고 물 챙기러 갔다가 간식통 어디 뒀는지 찾고, 목줄 들고 있다가 폰 찾고, 폰 찾다가 강아지는 현관에서 벌써 낑낑거리고... 시작부터 정신없었어요.

근데 더 웃긴 건 밖에 나가서였음. 나는 산책이면 쭉 걷는 건 줄 알았는데 얘는 다섯 걸음 가고 멈춤. 냄새 맡고 또 멈춤. 나는 성격이 좀 급해서 왜 안 가냐고 속으로 난리였는데, 어느 날은 비 오기 직전이라 빨리 돌고 들어가려다가 내가 목줄 당긴 순간 애가 뒤로 털썩 주저앉아버린 거예요. 그때 표정이 진짜... 아 됐고 너 혼자 빨리 가라 이 느낌? 그거 보고 괜히 미안해져서 그냥 나도 가만히 서 있었음.

그날 이후로 산책 방식이 아예 바뀌었어요. 내가 걷는 시간 아니고 얘가 확인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까 좀 편해지더라구요. 전봇대 하나를 그렇게 오래 보나 싶었는데 걔한텐 그게 오늘 동네 소식 읽는 거였나 봄. 나는 옆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바람 좀 맞고, 또 가다가 멈추면 같이 멈추고. 처음엔 답답했는데 이상하게 그 리듬에 익숙해지니까 내 머리도 덜 튐. 뭘 해야지, 빨리 해야지, 이 생각이 조금씩 줄어듦.

한 번은 내가 너무 정신 사나운 날이었어요. 집에서 지갑 잃어버린 줄 알고 서랍 다 뒤집고 혼자 열받아 있다가 산책 나갔는데, 얘가 평소보다 더 천천히 걷는 거예요. 솔직히 처음엔 아 지금 그것도 답답하다 이랬음 ㅠㅠ 근데 억지로 속도 맞추다 보니까 내가 방금까지 뭐 때문에 그렇게 흥분했는지도 좀 흐려지더라. 집에 와서 보니까 지갑은 냉장고 옆 선반에 있었고... 왜 거기 있었는진 아직도 모름 ㅋㅋ

그래서 내가 키우면서 제일 크게 알게 된 건 산책이 운동보다 속도 맞추는 일이란 거. 강아지가 나를 부지런하게 만들었다 이런 멋있는 얘기보다, 나보다 차분한 애 하나가 맨날 나 좀 천천히 가라고 잡아주는 느낌이 더 맞아요. 가끔은 나갈 준비만 20분 걸려도, 현관 앞에서 빙글빙글 돌아도, 결국 같이 한 바퀴 돌고 오면 집 안 공기가 좀 달라짐. 별거 아닌데 그 별거 아닌 게 은근 큼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