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라 그런가 요즘 날씨가 애매하게 덥고 애매하게 축축해서 밖에 오래 있기도 좀 귀찮은데, 그러다 보니 집 와서 PC 켜는 시간이 더 길어졌거든. 근데 최근에 내가 제대로 꽂힌 콘텐츠가 하나 있음. 원래 롤만 주구장창 하던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이상하게 게임 실황이랑 스토리 정리 영상 보는 맛에 살고 있음. 특히 내가 안 해본 게임인데 세계관 빵빵한 거 있으면 “와 이것도 나중에 해야지” 해놓고 결국 영상만 3시간 봄. 플레이는 안 했는데 감정선은 내가 제일 많이 탐. 남의 서사에 과몰입하는 방구석 감독 됨.

처음엔 그냥 밥 먹을 때 틀어놓는 용도였는데, 알고리즘이 한 번 물면 절대 안 놔주잖아. 하나 보고 나면 “이 영상 보신 분들은 이것도 좋아합니다” 이러는데, 그거 누르는 순간 새벽 3시임. 체감상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보다 내 취향 더 잘 앎. 특히 공포게임 실황은 내가 직접 하면 10분 만에 ESC 누를 인간이라 남이 비명 지르면서 해주는 게 제일 재밌더라. 내가 안 죽고 긴장감만 뽑아먹는 이 구조, 솔직히 너무 효율적임. 거의 치킨 뼈는 안 치우고 살만 먹는 수준.

또 웃긴 게, 롤은 내가 플레이하면 연패 박고 멘탈이 솔랭 강물처럼 흘러가는데, 남이 하는 티어 높은 판 분석이나 매드무비 같은 건 또 그렇게 재밌음. “아 저 각을 저렇게 본다고?” 하면서 보다가 막상 내 게임 들어가면 시야는 없고 손가락은 따로 놀고, 뇌랑 손이 불화 중임. 그래도 이런 콘텐츠 보다 보면 괜히 나도 잘할 것 같은 자신감이 차오르는데, 그 자신감은 보통 로딩창에서 최고조 찍고 인게임 5분 뒤에 퇴근함.

혹시 갤럼들은 요즘 뭐에 빠졌냐. 꼭 직접 하는 게임 아니어도 됨. 실황, 스토리 몰아보기, 대회 하이라이트, 아니면 아예 게임 BGM 틀어놓고 과제하는 타입도 있잖아. 난 요즘 진짜 “게임을 플레이하는 나”보다 “게임 콘텐츠를 소비하는 나” 시간이 더 길어져서 살짝 신기함. 이쯤 되면 내가 게이머인지 시청자인지 정체성이 흔들리는데, 아무튼 재밌으면 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시간 순삭되는 거 하나씩 추천 좀 해줘라. 괜히 또 하나 물리면 이번 주말도 증발할 예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