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들어오기 전에는 평일 낮 집이 그냥 조용한 공간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막상 들어와 보니까 조용한 게 아니라, 긴장감이 없는 시간이더라고요. 물론 아기 낮잠 잘 때만요. 평소엔 10분 전에 분명 거실 한가운데 있던 공갈젖꼭지가 왜 제 양말 서랍에서 나오는지부터 시작해서, 저는 매일 집 안의 미스터리를 수사하는 형사가 됐습니다. 회사 다닐 때는 몰랐는데 집이라는 공간이 생각보다 사건이 많은 곳이더라고요.

요즘 제일 웃긴 건 애 재우고 나면 꼭 뭘 대단하게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거예요. 책도 읽고 싶고, 미뤄둔 정리도 하고 싶고, 운동도 해야 할 것 같고. 근데 현실은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식탁 위 물티슈를 바라보다가 “아 지금이 자유시간이구나” 실감하는 걸로 끝나는 날이 많습니다. 이상하게 그 물티슈 하나가 되게 평화롭게 보여요. 예전엔 카페 가서 멍 때렸는데, 이제는 물티슈 보면서 힐링하는 사람 됐네요. 인간은 환경에 이렇게 적응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장보는 것도 좀 달라졌어요. 예전엔 가격만 봤는데, 지금은 “이건 한 손으로 뜯기 쉬운가”, “애 안고 들 수 있나”, “포장 소리 너무 크진 않나” 이런 걸 먼저 보게 되더라고요. 특히 과자 봉지 바스락 소리 크게 나는 날은 거의 작전 수행입니다. 겨우 재웠는데 그 소리 한 번에 다시 처음부터 갈 수 있잖아요. 그래서 괜히 봉지 여는 기술만 늘었습니다. 이쯤 되면 제 특기가 엑셀 말고 무소음 개봉이어도 될 것 같아요.

다른 분들도 육아휴직하거나 집에 오래 있어 보니까 새삼 달라 보이는 일상 같은 거 있었나요? 저는 별거 아닌데도 해 질 무렵 잠깐 창가에 서 있으면 “오늘도 어떻게든 굴러갔네” 싶은 순간이 제일 좋더라고요. 피곤한데 또 웃기고, 정신없는데 또 묘하게 따뜻한 그런 날들요. 원래 다 이런 건지, 아니면 저만 너무 사소한 데서 감동받는 건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