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병동에 있다 보니 몸은 집에 와 있어도 마음은 아직 근무 중일 때가 많아요. 퇴근하고 씻고 누웠는데도 오늘 놓친 건 없었나, 그 보호자분 말투가 왜 그렇게 예민했나, 내가 신규한테 너무 급하게 말한 건 아니었나 이런 생각이 줄줄이 따라오더라고요. 특히 바쁜 날일수록 이상하게 집에 와서 더 선명해져요. 현장에 있을 땐 정신없이 지나가는데, 조용해지면 그때부터 하나씩 떠오르는 거죠.

예전엔 제가 유난한 줄 알았어요. 근데 오래 일한 선생님들하고 이야기해보면 다 비슷하더라고요. 환자 상태 걱정도 있지만, 사실은 사람 책임지는 자리에서 오는 긴장감이 계속 남는 것 같아요. 수간호사 되면서 더 심해진 부분도 있었고요. 내 판단 하나가 분위기를 바꾸고, 누군가는 그날 하루를 통째로 힘들게 보낼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건 개인 성격 문제라기보다, 의료 현장 구조 자체가 사람 머리를 오래 붙잡아 두는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퇴근 후에 생각을 완전히 없애려 하기보다, 선을 긋는 연습을 했어요. 집 가는 길에 오늘 걸렸던 일 세 가지만 정리하고, 해결 가능한 건 내일 메모로 넘기고, 해결 안 되는 감정은 그냥 “아 오늘 내가 많이 긴장했구나” 하고 인정하는 식으로요. 이게 당장 뚝 끊어주진 않지만 조금씩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그리고 계속 머리가 과열되는 날은 혼자 참기보다 같은 직종 사람끼리 짧게라도 털어놓는 게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괜히 전문가들 사이에서 디브리핑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다만 가끔은 이런 개인 노력만으로 버티게 하는 분위기가 제일 답답해요. 인력은 빠듯하고, 설명은 더 많이 요구되고, 실수는 절대 안 되고, 감정노동은 당연한 걸로 여겨지니까요. 결국 퇴근 후에도 생각이 안 풀리는 건 개인 멘탈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환경하고도 많이 연결돼 있을 수 있어요. 여기 계신 분들은 퇴근 후 머릿속이 계속 돌아갈 때 어떻게 정리하세요? 그냥 시간이 답이었는지, 아니면 진짜 좀 나아졌던 방법이 있었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