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다니면서 과민성대장증후군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진짜 힘든 게 배가 아픈 그 자체보다 “또 이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인 것 같아요. 저는 발표 있는 날, 지도교수님이 갑자기 부를 것 같은 날, 심지어 그냥 조용한 연구실에서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날도 괜히 장부터 긴장하더라고요. 남들은 그냥 예민하네 하고 넘기는데, 이건 예민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일상 동선이 통째로 화장실 기준으로 짜인다는 게 좀 서글픔. 카페도 아무 데나 못 가고, 회의실 자리도 출입문 가까운 쪽부터 보게 되고, 버스나 지하철 탈 때도 일단 불안부터 올라와요.

요즘 드는 생각은, 내가 몸에 끌려다니는 건지 마음에 끌려다니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거예요. 장이 예민하니까 불안해지는 건 맞는데, 또 불안해질수록 더 심해지는 느낌도 있어서요. 그래서 한동안은 음식만 엄청 조심했는데, 막상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잠 못 자거나 스트레스 쌓이면 바로 티 나고, 별일 아닌 말 한마디에도 하루 컨디션이 무너지는 날이 있음. 그래서 최근에는 “무조건 참기”보다 기록해보는 게 조금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뭐 먹었는지보다 그날 기분이 어땠는지 같이 적는 식으로요.

근데 또 웃긴 건, 이렇게 살다 보니까 작은 평온이 엄청 귀하게 느껴져요. 배 안 아프고 수업 하나 무사히 끝내면 그날은 진짜 성공한 날 같음. 기준이 너무 낮아진 거 아닌가 싶다가도, 그런 날이 있으니까 버티는 것 같기도 하고요. 주변에 말하면 “병원 다시 가봐” “유산균 먹어봐” 이런 얘기 많이 듣는데, 물론 그런 것도 도움은 될 수 있어요. 근데 당사자는 이미 별거 다 해봤을 가능성이 높잖아요. 가끔은 해결책보다 “그럴 수 있지” 한마디가 더 필요할 때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