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오래 일해서 그런지, 이상 증상 있어도 제일 늦게 병원 가는 사람이 저였어요. 남 몸은 그렇게 빨리 보면서 정작 제 몸은 맨날 뒤로 밀어둠. 이번에도 그랬고요. 몇 주 전부터 오른쪽 얼굴이 좀 묘하게 저리고, 두통도 계속 한쪽으로만 와서 느낌이 쎄했는데 그냥 피곤해서 그렇겠지 하고 넘겼어요. 야간 몇 번 돌고 나면 몸이 맛 가는 거 익숙하니까요.

근데 출근해서 차트 보는데 글자가 순간 이상하게 겹쳐 보이더라구요. 진짜 한 10초? 길지도 않았는데 그 짧은 순간에 아 이건 장난 아니네 싶었어요. 응급실에서 이런 증상으로 오는 사람들 너무 많이 봤으니까 더 기분이 더러웠음. 퇴근하고 바로 신경과 갔어요. 솔직히 가면서도 민망했어요. 맨날 환자들한테 빨리 오셔야죠 하는 사람이 본인은 이 꼴이니까 ㅋㅋ

진료실 들어가서 증상 얘기하는데, 의사가 생각보다 되게 차분하게 묻더라구요. 언제부터인지, 한쪽만 그런지, 말 꼬인 적은 없는지, 시야 이상 있었는지. 저는 직업병처럼 자꾸 제가 먼저 추정하고 설명하려고 했는데 그걸 싹 끊고 필요한 것만 보더라고요. 그게 좀 좋았어요. 괜히 아는 척하면 더 꼬이거든요. 검사 몇 개 하고 영상도 보자 해서 진행했는데 기다리는 시간 내내 별생각 다 났어요. 별거 아니길 바라면서도, 별거 아니면 그건 또 그것대로 억울하고 ㅠㅠ

다행히 급한 쪽은 아니었어요. 바로 큰일 난 건 아니라서 숨은 돌렸는데, 편두통 양상에 신경 증상이 섞여 보일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제가 그 말을 듣고 안심만 한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좀 짜증났음. 몸이 저렇게 신호를 줬는데도 버틴 게 너무 한심해서. 응급실에서 보호자들한테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속으로 생각한 적 많았는데, 사람 마음이 다 똑같더라구요. 설마 나한테? 이거 하나로 버티게 됨.

약 받고 나오는데 부산 바람이 좀 세더라구요. 머리는 여전히 묵직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더 또렷했어요. 아프면 바로 가야지 이런 반성문 같은 건 안 씀. 또 바쁘면 미루겠죠. 근데 적어도 이번엔 제 몸이 보내는 신호가 어떤 느낌인지 제대로 기억하게 됐어요. 그걸로 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