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거창한 일보다 별거 아닌 순간들이 더 오래 남는 것 같네요. 은퇴하고 나서는 시간에 쫓길 일이 줄어서 그런지, 아침에 창문 열었을 때 바람이 어떤지, 동네 나무 색이 며칠 새 또 달라졌는지 그런 게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경기 쪽에 살다 보니 집 근처 산책로가 썩 화려한 건 아닌데, 그래도 익숙한 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그날그날 분위기가 또 다르더라고요. 같은 벤치인데 어떤 날은 그냥 지나치고, 어떤 날은 괜히 앉아서 사람들 오가는 거 한참 보게 되고요.

며칠 전에는 산책하다가 중간에 작은 카페에 들렀습니다. 일부러 유명한 곳 찾아가는 스타일은 아니고, 걷다가 “여긴 한번 들어가 볼까” 싶은 데가 있으면 가보는 편입니다. 그날은 손님도 많지 않아서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셨는데, 밖에서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보고 있으니 그게 또 그렇게 마음이 편하더군요. 예전에는 카페 가도 뭘 해야 할 것 같고 시간을 알차게 써야 할 것 같았는데, 요즘은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제일 좋습니다. 나이 들수록 심심한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싶어요.

집에 오면 대단한 취미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화분 물 챙기고, 가끔 예전에 사둔 잡지나 책 다시 들춰보고, 저녁엔 괜히 창밖 보면서 하루 정리하는 정도예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소소한 루틴이 사람을 좀 안정되게 해주는 것 같네요.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하루가 비어 있다는 느낌은 덜하고, “오늘도 그냥 잘 보냈다” 싶은 마음이 듭니다. 젊을 때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요즘은 그게 꽤 귀한 감정이더라고요.

회원분들은 요즘 일상에서 어떤 소소한 재미 느끼시나요? 꼭 돈 들거나 멀리 가지 않아도, 괜히 기분 좋아지는 자기만의 순간이 있으면 듣고 싶네요. 저는 당분간은 아침 산책이랑 동네 카페 한 바퀴 도는 걸 제일 잘 누려보려고 합니다. 별일 없는 날이 오히려 좋은 날일 때도 있는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