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 정맥 혈전증이 위험한 진짜 이유
퇴근 후 만난 동료가 “어제 장거리 회의를 다녀왔더니 종아리가 땅땅해요,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겠죠?”라며 웃으며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 질문에 간단히 답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심부 정맥 혈전증은 다리 깊숙한 곳의 정맥 안에서 혈액이 굳어 덩어리를 이루는 질환으로, 초기에는 단순한 붓기나 뻐근함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 혈전이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혈전 일부가 떨어져 나가 혈류를 타고 폐로 이동하면 폐색전증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한 응급 상황입니다.
합병증으로 혈전 형성이 8례(0.9%)에서 발생했으며, 이 중 5례는 혈전 제거술을 시행하고 3례는 보존적 치료로 호전되었습니다.[1]
다만 모든 심부 정맥 혈전이 곧바로 폐색전증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발견과 치료를 시작하는 시점이 이후 경과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어, 다리 붓기가 하루 이상 가라앉지 않는다면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만 생긴다는 생각, 절반만 맞습니다
심부 정맥 혈전증이라고 하면 흔히 장거리 비행 중 다리를 움직이지 않아 생기는 이른바 이코노미클래스증후군을 떠올립니다. 실제로 4시간 이상 좌석에 고정된 자세로 앉아 있으면 종아리 근육이 정맥 속 혈액을 밀어 올리는 펌프 작용을 하지 못해 혈류가 정체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만나는 원인은 비행과 무관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큰 수술을 받고 며칠간 침대에 누워 지낸 경우, 다리 골절로 깁스를 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 암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 임신과 출산 전후, 경구 피임약이나 호르몬 치료를 받는 경우까지 원인은 다양합니다.
- 수술 후 장기간 침상 안정
- 골절이나 깁스로 인한 부동
- 임신 및 출산 전후
- 경구 피임약이나 호르몬 치료
- 암 치료 중이거나 과거 혈전 병력이 있는 경우
정형외과에서 무릎이나 고관절 수술을 받은 환자는 수술 다음 날부터 발목을 굽혔다 펴는 운동을 반복하도록 안내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종아리 근육 펌프 작용을 대신해 혈류 정체를 줄이기 위한 조치입니다.
다리가 심하게 부어야만 혈전이라는 생각은 오해입니다
혈전증이라고 하면 다리 전체가 팅팅 붓고 걸음을 걷기 힘들 정도로 아픈 모습을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쪽 다리만 미세하게 붓거나,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오목하게 들어가는 정도의 부종만 나타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통증도 뻐근한 느낌 정도에 그치는 사례가 있어 스스로 알아채기 어려운 환자도 상당수입니다.
진료 시 양쪽 종아리 둘레를 줄자로 재어 3cm 이상 차이가 나는지 확인하는 것이 기본적인 선별 방법 중 하나입니다. 피부색이 붉거나 푸르스름하게 변하고 만졌을 때 열감이 느껴지는 것도 함께 살펴야 할 신호입니다.
심부 정맥 혈전증과 호르몬 치료를 둘러싼 오해
폐경기 호르몬 치료를 고민하는 경우 “호르몬제를 먹으면 혈전이 생긴다더라”는 이야기 때문에 치료 자체를 꺼리는 사례가 있습니다.
「BMJ」에 실린 메타분석(Canonico 등, 2008)에서 경구 에스트로겐은 정맥혈전색전증 위험을 약 2.4배 높였으나(95% CI 1.9~3.0), 경피 에스트로겐은 유의한 증가가 없었습니다(교차비 1.2, 95% CI 0.9~1.7).[2]
| 구분 | 경구 에스트로겐 | 경피 에스트로겐 |
|---|
| 정맥혈전색전증 위험(교차비) | 약 2.4배 (95% CI 1.9~3.0) | 유의한 증가 없음 (1.2, 95% CI 0.9~1.7) |
| 관련 자료 축적 정도 | 상대적으로 풍부 | 상대적으로 적어 해석 주의 필요 |
이 결과를 놓고 보면, 과거 혈전 병력이나 비만, 흡연 등 위험 요인이 있는 경우에는 경피 제형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선택지로 언급되고, 이런 위험 요인이 없는 건강한 여성이라면 경구 제형도 선택지에 포함해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같은 호에 실린 논평은 50~59세 건강한 여성을 기준으로 경구 병합요법이 1만 명당 연간 약 11건, 경구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이 약 2건의 정맥혈전색전증을 추가로 유발하는 수준이라고 정리했으며, 저자들은 경피 제제에 대한 자료가 상대적으로 적어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3]
즉 경피 제형이 전적으로 위험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개인의 위험 요인과 치료 목적을 함께 고려해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붓기가 며칠째 가라앉지 않는다면 확인해야 할 것들
다리 붓기가 하루이틀 안에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열감과 압통이 함께 나타난다면 진료를 통해 원인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D-이합체라는 혈액 수치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도플러 초음파로 정맥 안의 혈류와 혈전 유무를 직접 확인합니다. 탐촉자로 정맥을 눌러보는 압박 초음파 검사에서 정상 정맥은 눌렀을 때 눈에 띄게 찌그러지지만, 혈전이 있는 정맥은 눌러도 모양이 거의 변하지 않는 차이를 관찰합니다.
특히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이나 가슴 통증이 함께 나타난다면 이는 응급 상황일 수 있어 지체 없이 진료가 필요합니다.
혈전증을 둘러싼 궁금증, 짚어봅니다
본 콘텐츠는 일반적인 건강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의학적 진단·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증상이 있으면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