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아이도 피하지 못한 유효기한 착오
2025년 10월이 사용 기한이었던 생리식염수 한 병이 4개월이나 지난 2026년 2월에도 병원 응급실 카트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40도 고열로 실려 온 세 살 아이에게 결국 투여됐습니다.
2026년 2월 전북 전주의 한 종합병원에서 40도 고열로 응급실을 찾은 3세 아동에게 유효기한이 4개월 지난 생리식염수 수액이 투여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1]
검수 체계를 갖춘 병원에서도 이런 착오가 생긴다면, 상비약을 서랍 한쪽에 넣어두고 몇 년씩 잊고 지내는 집에서는 훨씬 더 자주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유통기한 지난 약 먹었을 때 나타나는 몸의 반응은 성분과 보관 상태에 따라 제각각입니다.
수면제와 만성질환 약을 오래 쓰는 사람일수록 더 살펴야 하는 이유
오래전에 처방받은 약을 서랍 한쪽에 쌓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사람이라면 이 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해 수면제를 처방받는 경우, 한 번에 여러 달치를 받아두고 필요한 날에만 골라 먹는 경우가 흔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졸피뎀 처방 환자는 187만 명, 항불안제 처방 환자는 616만 명이었고 70대 이상 졸피뎀 처방 환자는 2023년 59만 9,021명에서 2024년 61만 4,031명으로 늘었습니다.[2]
고령층일수록 여러 만성질환 약을 함께 복용하면서 남는 약을 버리지 않고 쟁여두는 경우가 많고, 특히 70대 이상에서 졸피뎀 사용이 꾸준히 늘고 있어 남은 약의 보관 기간도 함께 길어지는 셈입니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해열시럽이나 감기약처럼 자주 쓰지 않는 소아용 상비약이, 한약을 챙겨 먹는 경우라면 탕약이나 환 형태의 약이 기한이 지난 채 방치되기 쉬운 대표적인 예입니다.
약이 상하는 진짜 이유, 포장 겉면 숫자만으론 부족합니다
유효기한은 제조사가 정해진 보관 조건에서 안정성 시험을 거쳐 정한 숫자입니다. 실온이라도 여름철 자동차 안이나 욕실 선반처럼 열과 습기가 많은 곳에 두면 표기된 기한보다 훨씬 빨리 성분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에페드린의 하루 최대 허용량을 150mg으로 제한하지만 국내에는 이런 규정이 없고, 한약제제는 성분과 함량을 표기할 의무도 없습니다.[3]
이런 규정 공백은 한약 조제약에서 더 두드러집니다. 성분 함량이 라벨에 없다 보니 유효기한이 지나 성분비가 달라져도 소비자가 그 변화를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다만 모든 약이 기한을 넘기자마자 위험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습도와 열을 피해 원래 포장 그대로 보관한 알약이라면 기한이 조금 지나도 성분이 급격히 무너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개봉한 시럽제나 점안액, 인슐린 같은 제제는 조금만 기한을 넘겨도 효과와 안전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 같은 잣대로 볼 수 없습니다.
약장 앞에서 5분이면 끝나는 점검 순서
약을 버릴지 그대로 둘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다음 다섯 단계를 순서대로 확인해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 포장 겉면이나 약 봉투에 적힌 유효기한부터 확인합니다.
- 시럽제나 안약처럼 액체 형태라면 개봉일을 따로 적어뒀는지 확인하고, 없다면 개봉 시점을 기억나는 대로 표시해둡니다.
- 알약이나 캡슐은 색이 변했거나 표면이 부스러지지 않았는지 살펴봅니다.
- 물약이나 시럽은 냄새가 시큼하게 변했거나 층이 분리돼 보이지 않는지 확인합니다.
- 수면제, 항불안제 같은 향정신성의약품은 처방일과 남은 알약 수를 함께 적어 다음 진료 때 가져갈 수 있도록 정리합니다.
이 다섯 단계 중 하나라도 걸리는 항목이 있으면 해당 약은 유효기한이 남아 있어도 새로 구입하는 쪽이 더 정확한 선택입니다.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 폐기와 보관 기준
이미 개봉해 쓰고 있는 시럽제나 안약이라면 개봉일을 기준으로 계산한 사용기한을 따라야 하고, 밀봉 포장을 그대로 유지한 알약이라면 포장에 표기된 유효기한까지는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약 형태 | 기준 | 주의할 점 |
|---|
| 시럽제·물약 | 개봉 후 1개월 이내 | 개봉일 표시가 없으면 기한 계산이 어렵습니다 |
| 안약·인공눈물 | 개봉 후 1개월 이내 | 방부제가 없는 1회용은 개봉 즉시 사용해야 합니다 |
| 알약·캡슐(밀봉 유지) | 포장 표기 유효기한까지 | 변색·부스러짐이 있으면 기한 내라도 폐기합니다 |
| 한약(탕약·환) | 조제 시 안내받은 기한까지 | 성분 함량 표기가 없어 임의 연장은 피해야 합니다 |
| 수면제 등 향정신성의약품 | 처방 기준 남은 용량 확인 | 임의 폐기 시 회수 절차 확인이 필요합니다 |
표에 나온 기준을 벗어난 상태에서 임의로 판단해 계속 복용하는 것은 형태와 상관없이 권하지 않습니다.
기한 지난 수면제를 먹은 다음 날, 몸이 먼저 알아차립니다
몇 달째 서랍 한쪽에 남겨둔 수면제를 필요한 날에만 꺼내 먹는 경우, 유효기한이 지난 뒤에는 반응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성분이 서서히 분해되면서 효과가 약해지면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새벽에 자주 깨는 얕은 잠이 이어지면서 다음 날 회의 중 집중력이 뚝 떨어지거나 운전 중 반응 속도가 느려지는 식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일부 성분이 예상보다 강하게 남아 있으면 아침까지 몽롱한 상태가 이어지면서 출근길 대중교통에서 조는 일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한약(생약)제제도 비슷합니다.
2012~2021년 한국의약품이상사례보고시스템에 접수된 한약(생약)제제 관련 이상사례 1,629건 중 위장관계가 467건(28.7%)으로 가장 많았고 피부·피하조직 327건(20.1%), 신경계 185건(11.4%)이 뒤를 이었습니다.[4]
복용 후 속이 계속 불편해 근무 중에도 화장실을 자주 오가거나, 갑자기 올라온 발진 때문에 사람을 마주하는 자리가 부담스러워지는 경험은 생각보다 일상에 큰 영향을 줍니다.
앞서 언급한 에페드린처럼 함량이 표기되지 않는 성분은 유효기한이 지나 비율이 달라졌을 때 신경과민이나 손 떨림, 불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특히 눈여겨봐야 하고, 이런 증상은 결국 그날그날의 업무 집중도와 대인관계까지 흔들어놓습니다.
약장 정리 중 나오는 질문 다섯 가지
본 콘텐츠는 일반적인 건강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의학적 진단·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증상이 있으면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