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국립보건원 연구진, 약물 재창출로 차기 유행 대비 가능성 제시
2015년 전 세계를 강타한 지카 바이러스 유행으로 수백 명의 신생아가 소두증을 비롯한 심각한 뇌 발달 이상을 겪은 가운데, 기존에 사용되던 항생제가 지카 바이러스로 인한 뇌 감염과 신경 손상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치료제나 백신이 아직 없는 상황에서 약물 재창출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된다.
이번 연구는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진이 주도했으며, 국립신경질환·뇌졸중연구소, 국립중개과학진흥센터, 조지타운대학교 메디컬센터 소속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지카 바이러스 감염이 뇌 신경줄기세포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태아와 신생아에게 치명적인 신경학적 후유증을 남긴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바이러스 증식을 차단할 수 있는 약물을 찾기 위해 1만 종이 넘는 화합물을 대상으로 대규모 스크리닝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테트라사이클린 계열 항생제인 메타사이클린이 지카 바이러스의 핵심 효소인 NS2B-NS3 프로테아제 활성을 억제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효소는 바이러스 단백질을 잘라 새로운 바이러스 입자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프로테아제 활성을 차단하면 바이러스 증식 자체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실험 결과 메타사이클린은 배양된 신경줄기세포에서 지카 바이러스 감염을 줄였고, 감염된 신생 쥐 모델에서도 뇌 감염과 신경 손상이 완화되는 효과를 보였다. 치료를 받은 쥐는 균형 감각과 움직임 능력에서 위약군보다 나은 반응을 나타냈다.
아울러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개발됐다가 실패한 약물과 항염증제로 연구되던 후보 물질도 지카 바이러스 억제 가능성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인공지능 기반 가상 스크리닝 기법을 활용해 수십만 종의 화합물 구조를 분석하며 이러한 후보를 도출했다.
연구를 이끈 아빈드라 나트 박사는 “지카 바이러스 감염은 현재 감소했지만 언제든 다시 확산될 수 있는 위협”이라며 “이미 사용 중인 약물을 활용할 수 있다면 차기 유행에 보다 신속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항생제가 모든 신경 손상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으며, 체중 감소 등 일부 영향은 여전히 남아 있어 임상시험을 통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신약 개발이 아닌 기존 의약품을 새로운 감염병 치료에 적용하는 전략이 감염병 대응의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